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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칼럼/정인화]고전 읽기의 즐거움

입력 | 2007-12-15 03:11:00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스위스 기차여행에서였다. 내 앞에 흑인 여성 둘이 앉았는데, 나는 그만 슬며시 일어나 뒷자리로 옮겨 앉았다. 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가끔 그때 생각에 부끄럽고 씁쓸해진다. 나는 그때까지 피부색이 다른 사람의 처지를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산 것이었다. 생김이 다른 타인과 나는 속내도 당연히 다를 것이라고,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다.

세계를 여행하며 알게 된 것은, 어느 나라 사람이나 생각이나 삶의 방식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의 똑같은 감정을 지니고 산다. 가족에 대한 걱정, 좀 더 나은 삶에 대한 동경, 사랑에 대한 목마름, 이런 것이 지구촌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이 지구촌에는 우리보다 특별할 것도, 못할 것도 없는 사람들이 산다. 그러니 자기비하는 어리석다. ‘엽전’ ‘핫바지’ 이런 말들. 다 우리 자신의 문화와 삶을 비하하는 말이다. 열등감에 물들어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업신여기는 태도다.

이런 왜곡된 생각을 교정하고 인의예지(仁義禮智)의 길을 찾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여행을 통해 타인의 삶을 바라보면서 나의 삶을 정확히 볼 수 있었다. 기차에서의 일처럼 직접 경험함으로써 내 모순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여행이 여의치 않다면 독서를 통한 깨달음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좋은 책은 무지와 탐욕을 깨치게 하고 삶을 교정할 기회를 준다. 그런 책 중엔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어려서 읽은 동화가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안데르센의 동화는 인간의 순수한 본성을 일깨워 주는 교과서다. 나는 가끔 동화책을 다시 읽으며 슬픔과 기쁨을 느끼던 예전의 순수함을 떠올린다.

어려서 아버지에게 들은 한시나 명심보감, 맹자 등의 구절도 아직 내 마음 속에 남아 나를 일깨운다. 중국에 갔을 때 그곳 고등학교 복도에 맹교의 시가 적혀 있는 것을 보고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공산주의 이념으로도 없앨 수 없는 삶에 대한 사람의 태도나 생각이 시대를 초월해 존재하는 것을 확인하는 듯해 더 기뻤다. 화합, 인내, 절제, 용기, 사랑, 자비 등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이리라. 이런 가치를 지닌 책이 고전이다.

그런데 왜 요즘의 젊은이들은 고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걸까. 어릴 때부터 현실주의적 가치관에 너무 깊이 젖어 버렸기 때문은 아닐지. 이들에게 ‘탐욕을 멀리하고 미래와 내세를 바라보라’는 말은, 땡볕에 모래밭을 걸으라는 것만큼이나 허황된 조언일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삶을 통달한 이들의 지혜는 긴 역사 속에서 변함없이 빛나 온 것을. 이렇게 빛나는 지혜를 지닌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혜의 빛을 충분히 접하고 있는가. 아쉽게도 입시를 위한 독서나 영상매체에만 의존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세대를 특징짓는 말이 멀티미디어, 디지털, 네트워크 세대 등이다. 젊은이들은 인터넷, 동영상, 영화, 게임 등 많은 매체를 접하며 산다. 이들에게 문자 미디어에 집중하라는 것은 쇠귀에 경 읽기일 것이다.

하지만 글 읽기의 즐거움, 생각의 즐거움, 앎의 지평이 열릴 때의 환희, 이런 것이 사람의 진정한 저력임을 고전 속에서 알게 될 날이 있으리라 믿는다. 함석헌 선생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했다. 공부만 하고 생각이 없으면 조잡한 인간이 되고 만다. 생각과 공부가 잘 조화를 이루는 사람이라야 인생의 승리자가 된다. 그런 사람들이 주도하는 사회가 훌륭한 사회일 것이다. 동양 최고의 고전 첫 마디가 공부의 즐거움을 알라는 것이다. 그렇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들어가 보자. 고전 속으로.

정인화 관동대 교수·교양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