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논리로는 (나라의) 앞날이 없다.”
현재 통상교섭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종훈 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한국 측 수석대표는 4월 협상 타결 직후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일각의 한미 FTA 반대 주장을 겨냥해 ‘전체 국익 차원에서 한미 FTA는 도움이 된다’는 취지로 이렇게 강조했다.
올해 한국 민관(民官) 경제인들의 화두(話頭)는 ‘개방과 미래’였다.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됐고 한때 코스피지수가 2,000을 넘어서는 등의 성과도 이뤘지만 투자 부진으로 미래 성장 동력의 상실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변화와 혁신으로 위기를 돌파하려는 최고경영자(CEO)의 의지도 남다른 한 해였다.
경제계 주요 인사들의 ‘화제의 말’을 통해 올해 한국 경제를 돌아봤다.
○ 새로운 엔진에 시동을 걸어라
“중국은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 가는 상황의 샌드위치 신세여서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고생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이 한반도의 위치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월 25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 직후 언급한 ‘샌드위치론’은 한국 경제의 위기를 상징하는 용어가 됐다.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고, 앞서 가는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도 잇따랐다.
조석래 전경련 회장은 7월 23일 ‘전경련 제주하계포럼’ 기자간담회에서 “돈은 엄청난 겁쟁이여서 미래가 불확실하거나 겁이 나면 어디로 숨어버릴지 모른다”고 밝혀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이 먼저 조성돼야 함을 은연중 내비쳤다.
한미 FTA 협상 타결에 따른 기대와 우려도 엇갈렸다. 박홍수 전 농림부 장관은 3월 “내가 ‘밥 장관’인데 요즘 밥맛이 통 없다. 기분이 우울하다”며 농업 분야 개방에 대한 실무 부처 책임자로서의 걱정을 털어놨다.
○ 유가는 오르고 세금은 늘어나고…
유가 급등으로 서민 경제의 주름살도 크게 늘었다. 유류세 종합부동산세 등 과중한 세금 부담도 갈수록 커져만 갔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10월 재경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유류세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세계적으로 유가가 올라갔다고 세금을 깎아 주는 사례는 없다”고 일축했다. 한상률 국세청장은 12월 10일 전국세무관서장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종합부동산세 조세저항을 의식한 듯 “우리들(국세청 공무원들)도 연말에 내 월급봉투에서 세금을 떼 가는 것을 보면 솔직히 기분이 좋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설화(舌禍)도 잇따랐다. 권 부총리는 3월 “강남의 집을 팔고 분당으로 이사를 가라”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반면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은 7월 “금융자본은 하루아침에 육성되지 않는데 산업자본이라고 ‘대못질’을 해 못 쓰게 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는 소신 발언으로 눈길을 끌었다.
○ 변화와 혁신으로 위기를 돌파하라
위기를 돌파하려는 최고경영자(CEO)들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발언도 적지 않았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바람이 불지 않아 바람개비가 돌지 않을 때에는 앞으로 달려가면 돌게 된다”며 창조적 혁신경영으로 돌파구를 찾겠다고 말했다.
권영수 LG필립스LCD 사장은 ‘CEO는 고3 수험생과 같다’며 실적에 대한 중압감을 토로했다.
고 강권석 기업은행장은 별세 나흘 전인 지난달 26일 투병 중에도 직원들에게 보낸 마지막 ‘CEO 편지’에서 ‘긍정적인 사고’를 강조해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어느 철도회사 정비공이 고장 난 냉동열차를 수리하다가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는 냉동열차 안에서 점점 춥다고 느끼다가 결국 얼어 죽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열차는 냉동 기능이 고장 난 열차였습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