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이야기 ‘용의주도 미스신’
한예슬-여우 같은 여우(女優)!
그가 ‘용의주도 미스신’(19일 개봉)이라는 로맨틱 코미디에서 쇼핑하듯 남자와 만나는 캐릭터를 맡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딱 그림이 그려졌다. 그는 드라마 ‘환상의 커플’에서 나상실 역으로 얄미우면서도 사랑스럽고 미워하기 힘든 캐릭터를 보여줘 여성들이 그에게 ‘급호감’을 갖게 했다.
물론 두 캐릭터의 차이는 있지만 한예슬은 지금 대중이 그에게 기대하는 모습을 정확하게 영화에서 보여 준다. 그는 시원시원하다. 큰 눈을 확확 굴리며 듣기 좋지만은 않은 하이톤 목소리로 입을 크게 벌려 확확 내지른다. 슬랩스틱에도 온몸을 던진다. 다른 사람이 하면 오버일 수 있겠지만 한예슬이 하면 ‘약발’이 먹힌다, 아직까지는.
광고회사 AE 신미수(한예슬)는 문어발 연애를 즐긴다. 재벌 3세(권오중)와 만날 때는 청순가련 모드, 대학 선배인 고시생(김인권)을 만날 때는 헌신 모드, 연하의 래퍼(손호영)를 꼬실 때는 대담 모드로 분위기에 따라 변신하는 센스. 인생, 이만하면 괜찮다. 안티맨(이종혁)과 사사건건 악연으로 얽히는 것만 빼곤. 그러나 자신이 현실적이고 용의주도하다고 생각하는 미수에게도 진짜 현실의 쓴맛이 기다리고 있다.
국내 최대 영화제작사인 싸이더스FNH가 만들고 배급하는 이 영화는, 모기업인 KT의 자회사 KTF를 노골적으로 선전한다. 영화 속에서 미수는 아예 이 회사 영상통화 서비스 ‘쇼’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잊어버릴 때쯤 되면 등장인물들은 “쇼 300만 가입 기념인데요” 같은 대사를 날려 준다. 이종혁은 극중에서 KTF 부장님이다.
그것만 빼곤 꽤 즐거운 마음으로 볼 수 있다.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익숙한 장면이 자주 나오긴 하지만 귀여운 상상 장면으로 만화 같은 재치를 불어넣었고 현대의 20대 여성들이 공감할 만한 연애와 결혼에 대한 고민도 담았다.
재벌 3세가 선물한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달리다가, 클럽에서 잘생긴 연하남이랑 신나게 춤추다가, 그레이스 켈리 등 세계의 미녀들을 모방한 화려한 패션을 자랑하면서 싱글 여성들의 허영심과 환상을 한껏 충족시켜 주다가 후반부엔 과하지 않은 감동 분위기로 흘러간다. “인생은 어차피 찬스와 초이스뿐”이라는 기억에 남을 만한 대사 몇 마디 남겨 주고, 결국은 헛꿈 꾸는 여성들에게 ‘현실로 돌아오라’는 살뜰한 충고까지 잊지 않고, 이건 한예슬을 위해 쓰인 한 권의 ‘치크리트(chick-lit·젊은 여성을 위한 소설)’ 같은 영화다. 15세 이상.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