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농익어야 진짜 섹시
‘나는 전설이다’를 보고 나오는데, 여성들의 화제는 영화 속 윌 스미스(39)가 턱걸이를 할 때 보여 준 상반신이었다. 밀크 초콜릿 빛깔 피부에 섬세하게 조각된 그의 근육은, 거의 ‘죽음’이었다. ‘탄력적인 섹시함’이 넘친다. 작은 머리에 긴 다리, 착 올라붙은 엉덩이가 빚어내는 전체적 비주얼은 장난이 아니다.
올해도 스크린 속 섹시한 남녀 배우들은 관객들의 체온을 훈훈하게 높여 줬다. ‘300’의 스파르타 왕, 제라드 버틀러(38)를 뺄 수 없다. 마초적이고 제국주의적이라고 욕도 많이 먹은 영화지만 컴퓨터 그래픽 논란까지 불러온 그의 ‘빨래판 복근’은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그는 키 188cm에 테스토스테론이 퐁퐁 솟아나는 ‘마초적 섹시함’을 가졌다.
남녀 통틀어 올해 최고로 섹시한 사람을 꼽는다면 앤젤리나 졸리(32)다. 미국 잡지 ‘엠파이어’는 최근 ‘영화 역사상 가장 섹시한 배우 100인’을 꼽았는데 1위가 졸리였다. 최근작 ‘베오울프’에서 보여 준 황금빛 나신은 압도적이었다. 그는 ‘절대 섹시’다. 그래서인지 주변 남자들에게 졸리 같은 여자 어떠냐고 물으면 ‘멋지지만 내 여자로는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에구, 약하시기는.
이들은 다 미남 미녀다. 솔직히 섹시함은 99% 얼굴과 몸매에서 오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면의 섹시함’ 어쩌고 할 때마다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생각이 바뀌었다.
미국 주간지 ‘피플’은 해마다 ‘현존하는 최고의 섹시남(sexiest men alive)’을 뽑는다. 올해의 승자는 맷 데이먼(37). 그럴 줄 알았다. ‘하버드 범생이’ 느낌이었던 그를 재발견한 것은 ‘본’ 시리즈 때문이었다. 영화에서 잘 웃지도 않고 주야장천 한 가지 옷만 입는 그는 그렇게 변함없이 여자를 꼭 지켜줄 것만 같다. 영화 속에서도 한 여자만 사랑하고 실제로도 그렇다고 해서 더 멋지다. 그는 현실적인 ‘생활형 섹시남’이다.
정말 섹시하려면 조각 같은 몸매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최근 아줌마들의 우상이 된 ‘색, 계’의 량차오웨이(45). 나이도 엄청 들어 보이고 키도 작은 그가 늘씬한 여배우 탕웨이와 걸어갈 땐 ‘쫄래쫄래’라는 단어가 생각날 정도다. 정사 장면에서 드러난 몸매도 볼 게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의 허탈한 눈빛! 모든 것을 확 던져 버리고 싶게 만든다. 그는 ‘모성본능 자극형 섹시남’이다.
27일 개봉하는 ‘아메리칸 갱스터’의 덴절 워싱턴(53)은 올해의 마지막 섹시남이다. 영화 속 그는 비록 냉혹한 범죄자지만 가족을 끔찍이 사랑하는 과묵한 사내. 굳게 다문 그 입술에선 ‘묵직한 섹시함’이 느껴졌다. 한 여성 평론가는 영화가 끝나자마자 발그레한 얼굴로 말했다. “아유, 덴절 워싱턴 너무 멋지죠?”
지금까지 말한 배우들, 다 30∼50대다. 파릇파릇한 것들? 됐다. 조금 더 있다 오렴. 이 아저씨 아줌마들에겐 그들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세월과 함께 숙성된 ‘깊은 섹시함’이 있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