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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화면 속 방향 잃은 판타지…영화 ‘황금 나침반’

입력 | 2007-12-18 03:01:00


720억 원 들인 CG에 눈 즐거워

복잡한 캐릭터에 스토리는 묻혀

세계적으로 1400만 부가 팔린 필립 풀먼의 3부작 소설 ‘히즈 다크 머티리얼(His Dark Materials)’ 중 1편을 원작으로 삼은 ‘황금 나침반’은 필연적으로 ‘반지의 제왕’ 3부작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반지의 제왕’으로 흥행과 비평에서 최고의 성공을 거둔 미국의 제작사 ‘뉴 라인 시네마’가 새로 시작하는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만큼 독자들의 충성도가 높다는 원작 소설. 더군다나 판타지 영화의 높은 제작비 때문에 다들 하지 못했던 초호화 캐스팅. 과연 ‘반지의 제왕’을 넘어설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결국, 그러지는 못했지만.

○ 볼거리 가득한 판타지

가정해 보자. 우주에는 지구 같은 곳이 무수히 많다. 그중엔 지구처럼 영혼이 인간 속에 있는 곳도, ‘황금 나침반’의 세계처럼 영혼이 사람 옆에 동물의 모습을 한 ‘데몬’으로 존재하는 곳도 있다. 그 많은 세계는 ‘더스트’라는 물질로 연결된다. 즉, 이 물질을 이용하면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말.

얘기는 학자이자 탐험가인 아스리엘 경(대니얼 크레이그)이 ‘노스폴’에서 더스트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절대 권력을 가진 지배세력 ‘매지스테리움’은 권력이 흔들릴까 봐 그의 연구를 막으려 한다. 한편 아스리엘 경의 조카인 소녀 라라(다코타 블루 리처드)는 예언과 함께 전해 내려오는 일종의 진실 판독기인 황금 나침반을 얻게 되고 자신이 이를 지켜야 할 운명임을 알게 된다. 그런 라라에게 콜터 부인(니콜 키드먼)이 접근해 노스폴로의 여행을 제안한다.

약 1800억 원의 제작비 중 컴퓨터그래픽(CG)에만 720억 원을 써서 만든 배경과 캐릭터들은 판타지 영화의 즐거움을 충실히 전달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데몬과 라라를 돕는 곰 종족인 아머 베어. 고양이 표범 등 동물 형태의 데몬과는 얘기도 나누고 심부름도 시킬 수 있지만, 데몬이 아프면 주인도 아프다. 금방 등 뒤에서 코카콜라 병을 꺼낼 것 같은(CF와 똑같이 생겼다) 아머 베어 둘이 갑옷만 입고 맨주먹으로 ‘맞짱’을 뜨는 ‘곰 싸움’은 이 영화의 압권이다.

○ 너무 많고, 너무 빠르다.

풀먼의 원작은 명확하게 반종교적이며 범신론적인 세계관을 담고 있다. 소설 속에서 매지스테리움은 기독교 근본주의 단체를 의미한다. 그러나 영화는 종교적 색채가 강하지 않다. 미국 언론은 각본까지 쓴 감독 크리스 웨이츠가 풀먼의 세계관을 순화하는 ‘물타기’를 해 결과적으로 원작 팬들과 종교계를 모두 실망시켰다고 보도했다. 미국 가톨릭 단체는 보도자료를 내고 “약화된 내용 때문에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 줄 테고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원작 소설을 사 달라고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복잡한 상징과 많은 캐릭터를 내세웠지만 결국 이 영화는 소녀 라라의 모험에 그쳤고 그 모험의 당위성도 잘 설명하지 못했다. 영화평론가 김봉석 씨는 “‘반지의 제왕’은 절대 반지가 무엇이고 그래서 찾으러 가야 한다는 개념 등을 명확히 했지만 ‘황금 나침반’은 많은 상징과 캐릭터를 깔아 놓기에만 급급했다”고 말했다.

호화 캐스팅은 맞다. 백옥 피부에 금발, 황금 드레스를 입고 황금 원숭이 데몬을 거느린 ‘골든 레이디’ 니콜 키드먼의 차가운 카리스마는 빛난다. 뉴욕타임스는 “보톡스 맞은 메릴린 먼로”라고 비꼬았지만. 반면 대니얼 크레이그나 에바 그린은 잠깐씩 나와 존재감이 극히 약하다. 영화 마지막 부분은 다음 편에서의 그들의 활약을 암시한다. 어정쩡한 결말에 원작 팬들은 실망하겠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맛보기’에 그친 이 영화의 속편이 앞으로 더 거대한 이야기로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는 남는다. 전체 관람가.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