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 끝에 인도네시아의 발리에서 열린 제13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겸 제3차 교토의정서 당사국 총회에서 발리 로드맵이라는 행동계획(action plan)이 합의됐다.
온실가스 감축 압력 거셀 듯
온실가스 감축에 적극적인 유럽연합(EU)은 2020년까지 선진국만이라도 1990년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25∼40%를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감축 동참을 주장하는 미국의 반대에 부닥쳐 최종 합의에 진통을 겪었다. 결국 구체적 수치는 언급하지 않은 채 발리 로드맵을 채택해 교토의정서 이후의 새로운 온실가스 감축 의무 및 기후변화 정책에 관해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제15차 당사국 총회까지 협상을 통하여 구체적인 결과를 보고하도록 규정했다.
발리 로드맵은 선진국과 개도국을 모두 포함한 190여 개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에 다음과 같이 크게 다섯 가지 임무를 규정했다. 첫째, 기후변화협약의 조항과 원칙에 따라 장기적인 협력을 위한 비전을 공유한다. 둘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 측정, 보고,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각자의 형편에 맞게 노력을 기울이며 선진국의 노력에는 온실가스 배출 총량 제한도 포함한다. 셋째,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 노력을 강화하고, 특히 기후변화에 취약한 개도국의 적응을 돕기 위해 협력한다.
넷째,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환경친화기술, 신재생 에너지기술의 개발 및 개발된 기술을 개도국으로 이전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이를 위한 재정 확보 및 투자 증진에 힘쓴다. 다섯째, 이 모든 노력을 2009년까지 완료해 제15차 당사국 총회에서 보고한다. 발리 로드맵은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받는다. 완전한 성공은 2009년까지 어떤 결과를 도출하는가에 달려 있다.
발리 로드맵은 당장은 당사국에 교토의정서와 같은 배출총량규제 의무를 규정하지 않았지만 개도국도 각자의 형편에 맞는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도록 요구했다. 세계 9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한국은 2013년부터 적용할 새로운 의무에서 선진국으로 편입되거나, 적어도 개도국 중에서는 선진국에 버금가는 의무를 지도록 국제적인 압력을 받을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 의무는 이제 피해 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직접 부닥쳐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됐다. 선진국 기업에는 이미 온실가스 배출권이 사업 활동을 위한 면허와 같은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권을 확보하지 않고서는 사업을 확장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기존의 사업 활동도 위협받는다.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철강 석유화학 제지펄프 전력산업이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어떤 방식의 의무가 가장 유리할지에 대한 결과를 도출하고 이를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것이다. 동시에 국내에서는 저탄소 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저탄소 경제로 전환해 지속 가능 발전을 추구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한국 경제가 정보통신사회로의 전환을 이용해 선진국 진입의 기회를 잡았듯 저탄소 사회로의 이행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기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이 살길
온실가스 감축 의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안의 하나로 현재 급성장하는 탄소시장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환경부에서 검토 중인 국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산업자원부에서 실시하는 온실가스 배출 감축 등록사업이 탄소시장을 활용하기 위한 방법이다. 위기는 항상 기회와 함께 온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발견하는 나라와 기업은 더욱 발전하고 그렇지 못한 나라와 기업은 쇠퇴한다.
이명균 계명대 교수 에너지환경계획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