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수목극 ‘인순이는 예쁘다’
“달리기 중 가장 어려운 달리기는 과거로부터 도망쳐 달리는 것. 8차로 대로 중간쯤 건넜을 때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오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달리기다.”(10회 대사 중에서)
고등학교 때 살인을 저지른 박인순(김현주·사진)은 어두운 과거로부터 도망치는 중이다. 감방에서 나온 뒤로 유명 연극배우인 생모(나영희)도 찾았고, 지하철 선로에서 취객을 구해 ‘화제의 지하철녀’로 유명인사도 됐다. 그렇다면 모두들 실패라 낙인찍었던 그의 삶은 성공한 걸까.
여주인공이 살인 전과자라는 ‘센’ 설정, 반 뼘씩 부족함을 갖고 사는 인물들, 편견을 헤쳐 나가는 한 여성의 착한 스토리….
‘인순이는 예쁘다’(KBS 2TV 수목 오후 9시 55분)는 참 예쁜 드라마다. 시청자 게시판에도 좀체 비판을 찾아 볼 수 없다. ‘드라마다운 드라마’ ‘보석 같은 드라마’ ‘행복해지는 드라마’ 등 호평 일색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청률은 참 ‘못났다’. 첫 방영부터 지금까지 한 자릿수를 못 벗어난다. 지난주 경쟁작인 MBC ‘태왕사신기’가 종영했지만 5.6%에서 7.4%로 소폭 상승했을 뿐이다. 이 드라마의 연출은 표민수 PD. 그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마니아를 몰고 다니는 드라마 연출가다. ‘거짓말’부터 ‘바보 같은 사랑’ ‘푸른 안개’ ‘고독’ ‘넌 어느 별에서 왔니’까지, ‘풀하우스’을 제외하면 시청률은 별 볼일 없었다. 하지만 불륜마저도 ‘다르게’ 그려내는 그의 섬세한 연출력은 이번 ‘인순이…’에서도 빛을 발한다.
9일 촬영 현장에서 만난 그는 “‘인순이…’는 자기 스스로의 소통에 대한 이야기”라며 “전과자라는 현실의 굴레가 혹시 자신이 만든 감옥은 아닐까, ‘인순이…’를 통해 시청자들이 자기 스스로 묶어놓은 무언가로부터 벗어나자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극 중간중간 늘어놓는 인순이의 내레이션은 바로 이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효과적인 장치다. 지극히 일상적인 언어로 가슴에 스미는 인순이의 혼잣말에 시청자들은 자신을 투영하며 울고 웃는다. 특히 12회에 방영된 인순이의 독백은 여러 시청자를 울렸다. 인순이의 전과 사실을 밝히는 엄마의 기자회견을 바라보며 인순이는 말한다.
“엄마… 뒤늦게 나를 너무 사랑해 주시는 엄마. 제발 이제 그만… 그만 사랑해 주세요.”
인순이의 힘겨운 달리기는 앞으로 4회를 남겨두고 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