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태국인 잇는 메신저 될래요”
“사왓니가 리찬줄리아카. 려오 라오 마 팡 프렝깐 니꽈.”(안녕하세요 DJ 줄리아입니다. 음악 한 곡 들어 볼까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에 위치한 이주노동자방송국 스튜디오. ‘온 에어(on air)’ 신호가 켜지면 DJ는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태국어로 진행되는 인터넷 방송프로그램 ‘렝안타이(태국인 근로자를 뜻하는 말)의 즐거운 편지’를 진행하는 줄리아(33·사진) 씨. 이날 녹음한 프로그램은 매주 화요일 오후 2시부터 한 시간 동안 방송된다. 2005년부터 DJ로 활동한 그는 ‘방송물’을 먹은 뒤로 애드리브에도 능해졌다.
“요 며칠 조용한 음악만 틀었더니 신나는 음악으로 바꿔 달래요. 일하면서 슬픈 음악 들으면 힘 빠진대요. 청취자들은 한국에 사는 태국 근로자들이 대부분이거든요.”
방송이 입소문을 타면서 고정 팬들도 생겼다. e메일과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일주일 동안 20∼30건씩 사연이 접수된다.
태국 수린 출신인 그는 14년 전 고교 졸업 후 아는 이의 소개로 한국 유학길에 올랐다. 대학에서 공부시켜 준다는 조건이었다. 서울에 온 지 일주일 만에 브로커에게 사기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앞이 깜깜했죠. 와 보니 봉제공장인데 24시간 일을 시키더라고요. 고용주가 교회를 안 나가면 밥도 안 줬어요. 6개월 만에 도망쳤죠.”
그 후 공장을 전전하며 미싱 일을 배웠다. 그러다 통역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이 1995년. 한국외국어대 태국어과 교수를 만난 것이 인연이었다. 지금은 경기 의정부시 녹양동 성당 내 이주노동자 사무실에서 통역 일을 맡고 있다. 자신과 비슷한 문제를 겪는 노동자들을 돕는 일이다.
휴일이 거의 없는 그에게 방송 녹음을 하는 토요일은 ‘스트레스를 확 날리는 날’. 그는 이문세처럼 목소리만으로 청취자를 편안하게 해 주는 DJ가 되고 싶다. 또 다른 욕심은 인터넷으로만 소개되는 프로그램이 전국 방송을 타는 것. 진정한 ‘라디오 스타’가 되고 싶어서다.
“팬들도 부담 없이 라디오를 켜서 제 방송을 듣고 싶대요. 그래야 한국인들도 많이 듣죠. 이 방송을 통해 서로가 한 뼘씩 물러서고 이해했으면 좋겠어요. DJ도 좋지만 태국 사람과 한국인을 잇는 메신저가 되고 싶어요.”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촬영 : 염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