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기보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낫습니다.”
지난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제13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회의장에서 만난 한국 대표단 관계자는 “우리의 전략은 무엇인가”를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답했다.
“중진국인 한국은 선진국같이 얘기할 수도, 개발도상국 목소리를 낼 수도 없는 애매한 처지”라는 게 그의 군색한 설명이었다.
15일 폐막한 이번 총회에는 186개국이 참가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새 협약에 의무감축 가이드라인을 포함시킬지를 놓고 끝까지 팽팽한 힘겨루기를 했다.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들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며 공세를 취했다. 지구온난화 방지를 향한 큰 변화로 평가받는 ‘발리 로드맵’은 이런 치열한 과정을 거쳐 채택됐다.
하지만 한국은 2주의 총회 기간 내내 뒷짐을 쥔 ‘방관자’로 머물렀다. 경제규모 세계 10위권,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9위인 한국 정부의 주장은 총회 기간 중 확인하기 어려웠다. 반전을 거듭하는 ‘환경 외교전(戰)’의 와중에서 한국 대표단은 돌아가는 상황 파악에만 급급했다.
한국 대표단의 모습은 개발도상국의 이익을 앞장서 대변한 중국마저 “2020년까지 국내총생산(GDP)당 에너비 소비량을 30% 줄이겠다”고 발표한 것과 분명한 대비가 됐다.
이런 점 때문에 한국 측 수석대표인 이규용 환경부 장관이 기조연설을 했을 때에 옵서버로 회의를 지켜보던 비정부기구(NGO) 관계자들이 야유를 하기도 했다.
이 장관이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조치는 전혀 거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장관은 발리 로드맵 최종 발표를 앞두고 각국이 막판 힘겨루기를 하던 15일 아침 발리를 떠났다.
총회가 폐막된 뒤 한국 대표단의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 한국은 정부 안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가목표를 정해야 한다’는 의견과 ‘국익을 고려해 감축목표를 정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며 씁쓸해했다.
한국이 온실가스 감축 대상국에 포함될 시기는 2013년. 시한이 5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어정쩡한 준비 태세를 보며 불안감을 떨쳐 버리기 어려웠다. ―발리에서
성동기 사회부 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