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거래하던 사람들이 뱃머리를 돌렸어요. 이해는 가지만 야속한 마음이 듭니다.”
18일 오후 충남 태안군 근흥면 1000m² 규모의 서산수협 안흥판매사업소의 이정현 위판 담당 대리는 적막한 사업소 안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라면 해산물을 판매하는 경매사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할 시간. 하지만 기름 유출 사고 이후 물메기 아귀 문어 우럭 등을 잡는 고깃배들이 ‘태안산’이라는 꼬리표를 피하기 위해 주변 보령시 등으로 가 버렸다.
이 대리는 “물고기는 먼바다에서 잡기 때문에 오염의 영향이 없다”면서 “하지만 소비자들의 인식은 그렇지 않아서…”라며 답답해했다.
실제로 기름 오염 지역에서 난 해산물이 소비자들의 밥상에 오를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해양수산부가 17일 기름에 오염된 수산물이 유통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수산물 검사요원 23명이 충남과 전북지역 판매사업소를 점검했고 오염지역 5개 판매사업소의 업무를 중단시켰다. 사고 지역에서 굴 바지락 전복 등의 채취도 중단됐다.
서산시 천수만과 간월도, 홍성군 남당리, 보령시 천북면에서 나는 굴은 오염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방제 당국이 기름띠가 천수만에 유입되는 것을 막았고 전북 등지로 남하하는 타르 덩어리도 이 지역 어장에는 이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최장현 해양부 차관보는 “기름에 오염된 수산물은 냄새 등으로 곧바로 판별이 가능한 만큼 무조건 기피하지는 말아 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했다.
또 이 지역 명물인 우럭젓국, 게장국 등은 기름 유출 사고 오래 전에 잡힌 해산물을 삭혀서 만든 음식이어서 이번 사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서해에서 나는 해산물을 기피하고 있다. 보령수협 관계자는 “최근 수산시장을 찾아온 관광객들이 ‘서해산 말고 남해산을 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막연한 불안감으로 소비자들이 외면하는 바람에 서해 어민들의 피해는 더 커지고 있다. 재난을 당해 찢어지듯 아픈 서해 어민들의 가슴을 달래 주는 길은 자원봉사뿐만이 아니다.
그 이상으로 서해 어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전국의 소비자들이 이 지역 해산물을 신뢰해 더 많이 소비해 주는 일이다.―태안에서
지명훈 사회부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