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하지 않았는데도 응당 나타나야 할 존재처럼 버티고 앉아 자리를 내주지 않는 손님을 불청객이라 합니다. 설령 초대받은 사람 사이에 비집고 앉았다 하더라도 그런 처지라면 겸연쩍은 기색이 있어야 하는데 대다수의 불청객은 그렇지 않습니다. 곁에 앉은 사람이 수군거리거나 말거나 전혀 개의치 않고 식탁의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거나, 무작정 대화에 끼어들어 납득하기 어려운 수작으로 고집을 부리고, 억측을 키워 분위기를 망쳐 놓기 일쑤입니다. 그런 행동을 되풀이하면 결국은 철면피같고 예의 없는 인간으로 낙인찍혀 따돌림을 받게 됩니다.
나 역시 불청객의 처지였던 적이 없지 않습니다. 대개의 경우 그런 자리에서는 당당하지 못하고 거동이 어색해집니다. 담배를 끊은 직후의 금단현상처럼 어찌된 셈인지 몸 둘 바를 몰라 사소한 동작도 굼뜨고 어색하기 짝이 없어 식탁에 올려놓은 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야 하지만 싫다는 사람을 막무가내로 동행하도록 설득해 그 자리에 끼어들게 만든 친구의 체면을 손상시킬 것 같아서 곤혹스러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나는 고양이라는 동물에게 호감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 동물은 앙칼지거나 배타적인 이기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고양이라는 짐승을 길러 본 경험이 없습니다. 그 동물로부터 발단이 된 사소한 피해를 본 적도 없습니다. 그 동물이 갖는 품성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떠도는 소문 따위 혹은 겉모습이나 음습한 울음소리에서 느껴지는 왜곡된 인상만을 갖고 성품을 규정해 버렸습니다. 근거가 모호한 선입감 때문에 고양이라는 동물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가슴속에 굳어 버렸음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역시 편협하거나 공리적인 수준에서만 따질 때, 내 주위에서 불청객의 수효는 늘어날 겁니다. 그 수효의 증가는 부메랑이 되어 그것을 조장한 자신에게 되돌아와 자신이 바로 비우호적인 사람으로, 불청객의 처지에 놓이는 변고를 겪을지 모릅니다. 인간의 호화스러운 식탁에 부질없이 뛰어든 한 마리의 얄미운 고양이라도 온후한 가슴에서 우러나는 아량을 베풀 때, 나도 모르게 감춰졌던 두 배의 행복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 김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