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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서병훈]‘위대한 비주류’를 위하여

입력 | 2007-12-24 03:05:00


은퇴하신 은사를 모시고 북한산에 올랐다. 겨울비가 흩뿌리고 지나간 뒤라 대기는 청명했고 흰 눈을 덮어쓴 다갈색 초목은 단아하면서 정다웠다. 한껏 분위기가 고조되는데 후배 교수가 연방 입맛을 다셨다. 졸업논문 지도를 받은 대학원생이 상품권 봉투를 가져왔는데 돌려줄 길이 막연하다는 말이었다.

듣고 계시던 노교수님은 ‘희한한’ 경험을 들려주셨다. 사회생활을 하는 어떤 대학원생이 강의에 잘 나오지 않기에 야단을 쳤더니 현금이 든 봉투를 남기고 갔단다. 어이가 없었지만 학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 다음 ‘살아가는 방식이 서로 다른 모양’이라는 글 한 줄과 함께 돌려주셨다고 한다.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슈퍼 모델과 데이트를 하는 등 화제를 뿌리고 다닌다. 그를 보니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는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사르코지는 여느 프랑스 정치인과는 달리 자유니 진보 같은 추상적인 말을 잘 안 쓴다고 한다. ‘이제 생각은 그만하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을 해야 한다’는 자세다.

원칙 지켜야 실용주의 성공

사르코지는 ‘관념이나 이론 등 추상적인 말장난보다 실용적 응용에 더 집중해야 할 때’라는 자신의 생각을 중국에서 확실하게 보여 줬다. 그는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300억 달러 상당의 계약 수주에 성공하는 등 세일즈 외교의 대박을 터뜨렸다. 중국이 껄끄러워하는 인권 문제를 거론하지 않으면서 비위를 맞춰 준 덕분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만난 탓에 푸대접을 받은 모습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독일 경제인들이 메르켈 총리에게 볼멘소리를 내는 이유를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그러나 고지식함을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약삭빠르게 사는 자세를 미화해서도 안 된다. 그런 사람은 언젠가 제 꾀에 스스로 넘어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념 과잉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무원칙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 사리를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따지는 것과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원칙이 살아야 실용주의도 힘을 얻는다. ‘이명박 실용주의’도 이 점을 유념해야 한다.

영화 ‘황산벌’을 보면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고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말이 나온다. 시대를 찌르는 말이 아닐 수 없다. 3당 합당, DJP 연합,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등 원칙을 비웃고 정도를 팽개친 사람은 모두 대통령이 됐다. 무수한 비리 의혹을 뒤로 한 채 이명박 후보도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도 인격 파탄을 담보로 정치적 일확천금을 꿈꾼 인간이 여럿 나왔다. 그뿐일까. 우리 주변에는 그런 방식으로 출세한 자들이 차고 넘친다. 어느 인사는 높은 사람에게 눈 뜨고 볼 수 없는 아첨을 하더니 국제적 명망가가 됐다. 시쳇말로 ‘쪽팔림’은 순간이고 성공은 영원한가.

물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에 확신을 갖기 어려운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종류에 따라 꽃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늦게 피기도 한다’면서 젊은 연주자의 분발을 촉구했다. 그 말을 귀담아들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공자는 ‘덕이 있는 사람은 결코 외롭지 않다(德不孤)’고 가르쳤지만 그도 때로는 ‘차라리 뗏목을 타고 바다로 떠날’ 생각을 했다. 공자 같은 불세출의 현자가 그럴진대 우리 같은 범인이야 오죽할까.

우직한 ‘패자’가 세상 바꿔

그렇다고 시류에 투항할 것인가. 굴신(屈身)의 대열에 합류할 것인가.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 되는 데 방조할 것인가. 다행스럽게도 우리 주변에는 어수룩하다는 말을 들을지언정 우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아름다운 패자’가 될 수 있게 손을 잡아 줘야 한다. 그래야 승자도 정신을 차린다.

어느 시인은 ‘다 좋은데, 참기름에 찍어 먹히고 싶지는 않다’면서 산 낙지의 ‘마지막 소원’을 노래한 적이 있다. ‘위대한 비주류’가 버티고 있어야 사회가 바로 선다. 그들의 마지막 자존심에 기대를 걸어 본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서병훈 숭실대 교수·정치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