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총선에서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추종세력이 창당한 ‘국민의 힘(PPP)’이 228석, 태국의 전통 야당인 민주당이 166석을 차지했다(비공식 집계). 이는 현 과도군사정권에 대한 불신, 그리고 지난해 9월 부정부패를 이유로 군사쿠데타에 의해 물러난 탁신 전 총리의 대중영합주의식 정책에 대한 향수를 의미한다.
제1당으로 부상한 PPP는 2001∼2006년 탁신 전 총리의 정치 기반을 만들어 준 ‘태국애국당(TRT)’의 후신이다. PPP 당수인 사막 순다라베는 탁신이 창당했다가 선거부정을 저질러 헌법재판소의 정당 해체 명령을 받은 TRT의 정책 노선을 계승하고, 총선에서 이기면 자신은 총리에 취임하고 탁신을 경제고문으로 위촉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지난 총선과 같이 PPP는 북부와 동북부 지역에서 각각 58.7%와 73.3%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으나 민주당의 기반인 남부지역에서는 3.6%의 지지만을 받았다. 탁신 전 총리의 집권 기간에 발생했던 남부지역 폭력 사태의 후유증이다. 현재도 태국 남부지역에서는 거의 매일 테러와 폭력 사태가 발생해 계엄령하에서 이번 총선을 치렀다.
태국 헌법이 투표일로부터 30일 이내에 국회를 개회하고 30일 이내에 총리를 지명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2월 중순까지 새 정권이 탄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어느 정당도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으므로 결국 제1당과 군소정당이 연립정부를 수립해야 한다.
제1당인 PPP가 제3당 찻타이당(40석)과 제4당 뿌에아빤딘당(24석)과의 연정을 수립하는 방안이 거론됐지만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3당 지도자의 회동이 취소됐기 때문이다. PPP가 연정에 실패하면 제2당인 민주당이 군소정당과 연합해 아비싯 베짜지바가 총리로 임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어느 정부가 수립돼도 과제는 산적해 있다.
첫째, 탁신의 복귀를 둘러싼 군부와의 갈등이다. 군부가 내세운 과도정부는 지난주 국가안보사령부(ISOC)의 권한을 대폭 확대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국가안보를 이유로 통행금지나 구속, 정부 권한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탁신 전 총리가 귀국하면 군부와의 불편한 관계로 다시 쿠데타가 발생해 정국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 탁신 전 총리를 비롯한 TRT의 지도층 110명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5년간 정치행위가 금지된 상태다. 군에 대한 보복의 칼날을 우려한 군부는 ‘범죄자 탁신’을 귀국 즉시 구속해야 한다고 벼르고 있다.
둘째, 경제 회복에 대한 정책이다. 군사정권하에서 외국인 직접투자가 절반으로 급감했고 탁신 정부 당시 매년 5∼7%이던 경제성장률은 작년에 4%대로 추락했다. 또 군부는 공무원 급여를 올리고 고속도로 통행료와 유가를 인상해 서민의 반감을 샀다. 국민은 경제성장, 저금리 융자, 마약과의 전쟁을 이행한 탁신노믹스(탁신의 경제정책)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며 서민경제의 회생을 바란다.
셋째, 다양한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며 통합과 화합의 정치를 수행하는 강력한 추진력과 효율성을 갖춘 정치 지도력이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중산층의 몰락으로 인한 빈곤층의 확산, 남부지역의 말레이무슬림과 타이 불교도의 갈등 및 영토분리주의자의 무력 충돌, 북부지역 고산족의 시민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새 정부가 이런 난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태국에서 민주주의가 다시 순조롭게 진행되겠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탁신이 축출되기 전보다 훨씬 더 복잡한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군부가 다시 움직이는 혼미한 상태도 예측된다.
황규희 부산외국어대 교수 태국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