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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허문명]세종의 부활

입력 | 2007-12-26 02:58:00


세종이 즉위하던 1418년, 조선은 ‘7년 큰가뭄’에 접어든다. 22세의 젊은 왕은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 가마솥을 걸고 죽을 쒀 나눠주도록 했다. 어느 날부터는 경회루 동쪽에 초가를 지어 거기서 살았다. 왕비와 신하들이 “침전에 드시라”고 호소해도 “백성이 굶는데 편하게 잘 수는 없다”고 답했다.

▷세종의 삶은 고통으로 점철됐다. 재위 중에 부모, 큰아버지, 아내, 딸을 잃었고 각기병 피부병으로 움직이지 못하던 때도 있었다. 훈민정음 반포 무렵에는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을 거의 잃어 2m 앞의 사람도 못 알아봤다고 한다. 신하들이 ‘검은 염소를 고아 드시기를’ 청하지만 “임금 병 고치자고 남의 나라에서 온 짐승 씨를 말릴 수는 없다”며 거절했다. 1980년대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과 영화 ‘세종대왕’(1978년)의 작가 신봉승 씨는 “성군(聖君)을 넘어 성자(聖者)”라며 “세종을 두고 멀리 외국에서 리더십 모델을 찾는 것은 딱한 일”이라고 꼬집는다.

▷‘세종의 수성 리더십’ ‘세종 조선의 표준을 세우다’ ‘조선의 정치가 9인이 본 세종’ ‘창조의 CEO 세종’ 등에 이어 최근 ‘나는 조선이다’ ‘왕의 투쟁’ 등 세종을 다룬 책들이 나왔다. TV 대하드라마 ‘대왕 세종’(KBS1)도 내년 1월 5일 선보인다. 세종은 위대한 지도자였지만 32년 재위 기간 ‘스캔들’이 없어서인지 사극 주인공으로 재등장한 것은 30여 년 만이다.

▷세종의 부활은 그의 리더십이 이 시대에 재현되기를 바라는 대중심리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세종 리더십, 그 핵심은 ‘진정한 애민(愛民)’이다. 한글 창제도, 관노 출신 장영실을 파격 등용해 자격루(시계)를 만들게 한 것도, 수확량을 두 배로 늘린 간종법을 보급한 것도 자나 깨나 백성을 걱정한 결과다. ‘백성 사랑’은 병마와 참척의 고통을 견디며 학문에 매진하고, 일과 능력 중심으로 인재를 등용한 동력이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은 외국의 리더십 모델을 벤치마킹하기에 앞서 세종의 리더십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닮아 보려고 애쓸 일이다. 세종실록 안에 답이 있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