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예박물관 내년 2월까지 전시
17세기 조선 서예의 힘과 매력!
이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1607∼1689)과 동춘당 송준길(同春堂 宋浚吉·1606∼1672)이다.
평생 지기(知己)이던 이들은 당시 조선의 대표적 도학자(道學者)이고 북벌(北伐)을 주창한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다. 이들은 또한 17세기 최고 서예가이기도 했다. 그래서 세상은 두 송 씨의 서예를 놓고 양송체(兩宋體)라고 칭한다.
그 유명한 양송체의 서예는 어떠했을까. 한 시대를 풍미한 도학자에게 서예라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였을까.
그 전모를 가까이에서 엿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서울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서 내년 2월 24일까지 열리는 ‘동춘당·우암-직필(直筆)’전. 두 사람의 각종 서예 작품을 비롯해 탁본과 문집, 송시열을 그린 초상화(얼굴), 송준길 송시열과 연관된 인물들의 서예 회화 등 모두 100여 점을 전시한다. 그동안 선보이지 않았던 미공개작도 다수 포함돼 있다.
송준길은 자질이 온후 순수하고 예법과 태도가 탁 트인 반면 송시열은 국상의 형식을 놓고 서인과 남인이 논쟁을 벌인 예송(禮訟)논쟁 등 파란만장한 삶을 헤쳐 갔던 인물답게 매우 고집스럽고 매서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세상은 송준길을 빙옥(氷玉)에, 송시열을 태산에 비유하곤 한다.
이들의 글씨엔 이 같은 각자의 성정(性情)이 담겨 있어 흥미롭다. 송준길의 글씨는 흐트러짐 없이 반듯하고 단정한 편이다. ‘陽氣發處(양기발처)’처럼 그 획이 자신감 넘치고 거침없으면서도 그 안엔 정제된 질서가 교묘히 숨어 있다.
이에 비해 송시열의 글씨는 좀 더 대담하고 자유분방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각고(刻苦)’라는 작품. 공부하는 제자들에게 당부의 뜻을 전하기 위해 써 준 글씨로, 크기가 164×82cm에 이른다. 장중하고 힘이 넘치는 획 하나하나에서 우암의 성향과 내면을 한눈에 읽어 낼 수 있다. “글씨는 곧 정신”이라는 옛말이 실감난다.
송시열을 그린 초상화 9점도 매력적이다. 대부분 노년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로, 산전수전 다 겪은 노유학자의 고집과 매서움이 얼굴에 그대로 배어난다. 하지만 송준길의 초상은 전하는 것이 없어 전시에 소개되지 못했다.
전시 기간에 일반인을 위한 특강이 마련된다. 내년 1월 12일 오후 2시엔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1월 19일 오후 2시엔 송시열의 후손인 송준호 연세대 명예교수, 2월 2일 오후 2시엔 예송논쟁 전공자인 오석원 성균관대 교수가 특강을 맡는다. 02-580-1284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