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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통쾌한 인간풍자 ‘열하일기만보’ 동아연극상 4관왕

입력 | 2007-12-27 02:43:00


■44회 동아연극상 2007 심사 결과

“인문학적 깊이 느낄 수 있는 창작극 단연 돋보여”

‘연극촌 지원’ 밀양시에 특별상… 행정기관 처음

올해 동아연극상은 ‘열하일기만보’가 휩쓸었다.

26일 열린 제44회 동아연극상 심사에서 극단 미추의 ‘열하일기만보’는 대상을 비롯해 연출상(손진책)과 희곡상(배삼식) 무대미술기술상(김지연) 등 4관왕을 차지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김윤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는 “‘열하일기만보’는 요즘 보기 드물게 인문학적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묵직한 주제를 다룬 창작극으로 올해 선보인 연극 중 가장 두드러졌다”고 대상 선정 이유를 밝혔다. 상금은 2000만 원.

‘열하일기만보’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 소재를 따온 작품으로 말을 하는 기이한 동물 ‘연암’의 입을 빌려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보고 오늘날 사회 정치를 풍자한 작품. 작품을 쓴 작가 배삼식 씨는 심사위원단의 만장일치로 희곡상(상금 200만 원)을 수상했다.

극단 실험극장의 ‘심판’의 경우 “소극장 연극이 자꾸 가벼워지기만 하는 현실에서 모처럼 만난 무게감 있는 정극”이라는 호평과 함께 작품상 연출상 무대미술기술상 신인연기상 등에 마지막까지 거론됐으나 ‘열하일기만보’에 밀려 신인연기상만 받게 됐다.

특히 ‘심판’의 무대미술은 심사위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으나 상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심사위원(박동우 교수)이 참가한 작품은 후보작에서 뺀다는 원칙에 따라 논의에서 제외됐다. 박 교수가 무대미술을 맡은 ‘시련’ 역시 후보작에서 제외됐다.

무대미술기술상(상금 200만 원)은 ‘열하일기만보’에서 의상을 담당한 김지연 씨에게 돌아갔다.

연기상(상금 남녀 각 200만 원) 남자 부문은 ‘시련’에서 프록터 역을 열연한 김명수 씨와 ‘필로우맨’의 최정우 씨가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끝에, 심사위원단은 “항상 성실하게 연기를 대하고 ‘시련’ 같은 작품을 끌고 가는 에너지를 가진 배우도 흔치 않다”며 김명수 씨의 손을 들어줬다. 여배우의 경우 올해는 특별히 두드러진 후보가 없었다. ‘오레스테스’의 이지하 씨는 이 작품에서 비중은 크지 않았지만 안정된 화술과 연기 그리고 이전 작품에서도 꾸준히 좋은 연기를 보인 점을 인정받아 수상하게 됐다.

유인촌신인연기상(상금 남녀 각 150만 원)은 ‘심판’에서 K 역할을 했던 박윤희 씨와 ‘멜로드라마’에서 정신지체 여성 역의 김지성 씨에게 돌아갔다.

특별상(상금 200만 원)은 경남 밀양시에 주어졌다. 지방자치단체가 동아연극상을 수상한 것은 처음으로 밀양시는 “밀양연극촌 등 지역 연극 활성화에 행정기관이 지원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지방 연극 발전에 기여한 모범적 사례”로 꼽혀 수상하게 됐다.

한편 새개념연극상의 경우 ‘고골의 3부작’이 유일하게 후보에 올랐으나 “작품 완성도는 높았지만 ‘새 개념’으로 보기에는 어렵다”는 의견에 따라 올해는 수상작을 내지 않았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연극 연출 30여년… 연출상 손진책

“희곡 좋지… 연기 좋지…난 그냥 대표로 탄 거지”

“정말 감사하죠. 사실 내가 잘했다기보다는 일단은 (배)삼식의 희곡이 너무 좋았고, 좋은 배우들이 앙상블을 잘 맞춰 주고 스태프들이 도와준 덕분에 수상한 것 같고, 연출상은 제가 대표로 탄 거죠.”

올해 동아연극상 4개 부문을 휩쓴 ‘열하일기만보’의 연출가 손진책(60·사진) 극단 미추 대표는 26일 베세토 연극제 관람차 방문 중인 일본 도쿄에서 수상 소식을 들었다. 스태프와 배우에게 공을 돌리면서도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는 기쁜 기색이 묻어났다. 국내 연극계 대표적인 연출가 중 한 명인 그는 30여 년간 연극의 길을 걸어오면서 ‘이제야’ 동아연극상 연출상(상금 200만 원)을 수상했다.

“예전 동아연극상은 극단이 신청하면 심사해서 주는 형식이었는데 상 받겠다고 나서는 게 싫어 신청 자체를 안 했었죠. 제도가 바뀐 후에는 작품상이랑 다른 분야 상은 몇 번 탔는데 이상하게 연출상과는 계속 연이 안 닿다가 이번에 타게 됐네요.”

극단 대표로서 동아연극상 대상 수상과 연출가로서 연출상 수상 중 어느 게 더 기쁘냐는 질문에 그는 “아무래도 (상금이) 큰 대상이 좋지” 하며 껄껄 웃었다.

올해 초 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된 ‘열하일기만보’는 평론가들로부터 “품위 있는 작품” “모처럼 인문학적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연극”이라는 호평을 받았지만 극단은 1억 원 가까이 적자를 봤다.

“마당놀이로 좀 벌어서 연극 하나 올리면 늘 이렇게 까먹어요. 요즘은 뭐, 연극도 별로 없고 관객도 별로 없고 뮤지컬만 넘쳐나니…. 하지만 우리 극단이라도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계속 이런 작품을 해 나가야죠.”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한국연극의 뿌리’ 아르코서 시상식

동아연극상이 ‘연극의 메카’ 대학로로 간다. 제44회 동아연극상 시상식이 내년 1월 28일 오후 4시 서울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옛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것.

그동안 동아연극상 시상식은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강당에서 열려 왔으나 앞으로는 연극의 중심지인 대학로에서 시상식을 갖게 된다.

시상식 연출을 맡은 동아연극상 심사위원 이병훈 용인대 교수는 “아르코 예술극장은 한국 연극의 총본산이자 연극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뿌리와 같은 곳”이라며 “한국 연극계에 최고의 전통과 권위를 가진 동아연극상 시상식이 대학로에서 열리는 만큼 많은 연극인이 와서 서로 축하해 주는 축제의 자리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