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에 서로 이웃한 두 집이 있었습니다. 한 집은 늘 화목하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 반면에 한 집에선 늘 시끄럽고 티격태격 싸우는 소리가 났습니다. 불화한 집의 가장이 화목한 이웃집에 가서 그 이유를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기 집에는 나쁜 사람들만 살고 있지만, 당신 집은 잘난 사람들만 살고 있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더 자세한 이유를 듣고 싶어 물어보자, 자기 가족들은 잘못된 일이 있으면 서로 자기가 했다고 주장하니 항상 잘못하는 나쁜 사람들이며, 당신네 집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사람이 잘못했다고 주장하니 항상 잘하는 잘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나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쪽은 조용하고 잘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다른 한쪽은 시끄럽다며 이것이 이유의 전부라고 했습니다. 서로 잘못했다면서 책임지려는 자세, 서로 잘못이 없다며 떠넘기려는 자세의 차이가 두 집안의 가풍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로 책임 있는 사람들의 자세가 마땅히 이러하다면 복 받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충남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도 모든 사람이 잘잘못에 대한 책임 추궁을 떠나 생명 살리기에 대한 공동 의무를 이행하려는 노력이 먼저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이웃은 그렇게 따뜻한 불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고 깨닫게 해주는 것이 불성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사회의 이름 있는 사람들보다 이름 없는 일반 중생들이 불성을 더욱 잘 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회란 일반 중생들의 불성이 잘 발현되도록 이끌어 주는 문화가 있는 사회를 말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성찰할 줄 아는 덕망과 그 잘못을 고백할 줄 아는 참된 용기를 갖추도록 권면하는 문화가 있는 사회입니다. 요즘은 흠집 내고 끌어내리려는 문화가 만연해 있습니다. 누구 한 사람에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떼를 지어 손가락질로 조소하면서 결국 상극의 문화를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이제 한 해를 보내고 무자년 새해를 맞으면서 그로부터 벗어나 관용과 살림의 문화를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법어에서 “범부는 요구 조건만 많으므로 빚만 더 지고, 성인은 의무 조건만 많으시므로 복이 늘 족족하다”고 하신 말씀을 거울삼아 요구하고 원망하는 마음보다 수용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늘 반조해 보면서 살아가기로 다짐해 봅니다.
이명신 원불교 부산 서면교당 교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