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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성희]힐턴 vs 힐턴

입력 | 2007-12-27 21:18:00


“여자라면 네 마리의 애완동물을 키워야 한다. 옷장에 밍크 한 마리, 차고에 재규어 한 마리, 침대에 호랑이 한 마리, 그리고 뭐든지 사주는 얼간이 한 마리.” 지난달 국내 한 의류업체 광고모델로 내한하기도 했던 호텔 재벌 힐턴가(家)의 상속녀 패리스 힐턴(26)이 한 말이다. 전업모델도, 영화배우도, 왕족도 아니면서 파파라치 부대를 몰고 다니는 ‘패리스 현상’은 미국 사회의 병적 징후의 하나로 연구 대상이 되고 있을 정도다.

▷그는 ‘심플 라이프’란 리얼리티 프로그램 덕분에 유명세를 치르게 됐다. 한 번 입은 옷은 다시 입지 않고, 3000달러짜리 루이비통 가방에 애완견을 담아 다니는 재벌 상속녀가 평범한 가정이나 일터에서는 어떻게 행동할지를 담아낸 이 프로그램은 ‘부자 행태 엿보기 심리’를 자극하며 공전의 히트를 쳤다. 섹스비디오 유출, 음주운전, 감옥행 등 그의 엽기적 행적은 세계 황색저널리즘을 먹여 살리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패리스 힐턴을 수식해 온 ‘힐턴가의 상속녀’란 말이 지워지게 될 것 같다. 그의 할아버지인 배런 힐턴(80)이 힐턴호텔 코퍼레이션 매각으로 얻은 12억 달러(약 1조1000억 원)를 손녀인 패리스와 니키 자매가 아니라 자선단체인 콘래드 힐턴 재단에 기부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배런 힐턴은 “재산이 얼마가 되든 97%를 콘래드 힐턴 재단에 기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콘래드 힐턴 재단은 배런의 아버지이자 힐턴호텔의 창업주인 콘래드 힐턴(1887∼1979)의 이름을 따서 만든 자선단체다. 콘래드는 젊은 시절 단돈 50달러를 들고 텍사스에 들어가 호텔 마룻바닥 닦기부터 시작해 갖은 고생 끝에 전 세계에 500개가 넘는 호텔 체인을 소유한 ‘호텔왕’이 됐다. 그는 ‘기업이 국경을 넘지 않으면 군대가 국경을 넘어갈 것’이라고 했던 글로벌 경영인이었다. 배런은 기부로 아버지의 유지(遺志)를 이었다. ‘망나니 손녀’ 패리스는 이 결정에 실망할까? 그렇다 해도 생각만 조금 바꾸면 세상의 보통 사람들보단 조건이 좋다. 이미 ‘유명세’로 돈을 버는 백만장자이니까.

정 성 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