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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따라 세계일주]프랑스 마티네 공연

입력 | 2007-12-28 02:57:00


《마티네? 마티니? 마뤼네?

프랑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나의 유창한(?) 프랑스어 발음을 못 알아들을까.

‘마티네’라는 단어를 말할 때마다 늘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파르동(Pardon·뭐라고)?” 프랑스는 ‘마티네의 천국’ 같았다. 마티네(matinee)의 원래 뜻은 아침 또는 아침나절을 뜻한다. 공연계에서는 보통 낮 공연을 가리켜 마티네라 부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평일 낮 공연을 주로 가리킨다.

우리나라에서 마티네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돼 아직까지 일반인들에겐 좀 생소한 용어다.

프랑스에 와 보니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마티네 공연이 두드러지게 많았다.

심지어 평일 오전 11시나 11시 반, 낮 12시에 하는 공연도 적지 않았다.》

○낮 공연의 천국… 초중학생 단체관람도

우리나라에서는 마티네 공연이라고 하면 대부분 낮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주부를 겨냥한 이른바 ‘여성연극’이나 아니면 오전 틈새 시간을 활용한 ‘브런치 콘서트’ 정도를 떠올리게 되지만 프랑스 관객층은 훨씬 두꺼워서인지 아니면 관광객 관객이 많아서인지 몰라도 마티네 공연이 활성화돼 있었다.

나도 몇몇 마티네 공연을 봤다. 화요일 오후 2시 15분 파리의 코메디 극장에서 본 ‘마술피리’는 클래식을 좀 더 친근하게 관객에게 들려주기 위해 연주자들이 가면을 착용하는 등 약간의 퍼포먼스를 가미했던 마티네 클래식 공연이었다.

평일 낮 공연이었는데도 얼핏 봐도 500명이 넘는 관객이 공연장을 찾았다. 일반인도 있었지만 초중학생 등 학생 단체 관객도 눈에 띄었다. 우리로 치면 중학생을 인솔하고 온 카트린 세발리에라는 여교사는 “낮 시간에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프랑스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인데 주로 교사들이 좋은 작품을 추천한다”고 했다.

저녁 공연 시간도 우리나라와는 차이가 많았다. 평균적으로 우리나라보다 1시간 정도 차가 있는 듯했다. 이른 공연은 오후 7시 반에 시작하지만 9시나 10시에 시작하는 공연도 적지 않았다. 퇴근 후,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오거나, 저녁 만찬을 여유 있게 즐긴 후 공연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 같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평일 공연은 오후 7시 반이나 8시에 시작해 직장인들은 밥 먹을 시간도 빠듯하게 퇴근하자마자 헐레벌떡 쫓기듯이 공연장에 도착해야 하는 것과 달리 공연시간만 봐도 여가생활을 여유 있게 즐길 수 있게 배려한 것 같아 부러웠다.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밤늦게 공연이 끝난 후 교통편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가 가장 큰 문제지만.)

아무튼 다른 유럽 국가를 다닐 때는 낮에는 관광을 하고 밤에 공연을 보곤 했는데 파리에서는 낮에도 어찌나 공연이 많던지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없이 후딱 흘러갔다.

○뮤지컬보다 무용-연극-발레가 더 대접받아

파리에 와서 무엇보다 놀란 것은 프랑스 뮤지컬의 실체였다. 국내에서는 ‘노트르담 드 파리’ 등 프랑스 뮤지컬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사실 프랑스에서는 영국이나 미국처럼 뮤지컬이 주류의 공연예술 장르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각광받고 있는 ‘노트르담 드 파리’나 ‘십계’ ‘로미오와 줄리엣’ 등은 파리에서는 이미 막을 내렸고 다른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뮤지컬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물랑루즈는 공연이라기보다는 그야말로 상업적인 카바레 쇼로 분류돼 공연정보지에도 실리지 않았다.

일 년에 100편도 넘는 뮤지컬이 무대에 올려지는 한국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뮤지컬은 정말 찬밥 장르인 것 같았다. 혹시나 싶어 다니는 공연장마다 “뮤지컬은 어디 가면 볼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직원들은 “뮤지컬? 역시 관광객이군!” 하는 듯한 달갑지 않은 눈초리로 쳐다보곤 했다. 사실 프랑스는 뮤지컬보다는 무용이나 연극, 발레 등 다른 장르의 수준이 훨씬 높고 인정받는다.

유일하게 파리 시내의 샤틀레(Chatelet) 극장에서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공연 중이었다. 흥행이 잘되는지는 궁금했지만 굳이 보고 싶진 않아 매일 그냥 들러 티켓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늘 빈 좌석은 넘쳐났다.

뮤지컬보다는 기본 예술을 더 중시하는 프랑스에서 뮤지컬은 사극에 나오는 서자(庶子) 같았다. 재능은 있는데 인정 못 받는 서자!

유경숙 공연기획자 prniki1220@hotmail.com

▼티켓 싸게 구하는 법▼

프랑스에는 미국이나 영국처럼 남는 공연 티켓들을 한 곳에서 싸게 파는 ‘TKTS’ 부스가 없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곳에서도 공연을 싸게 보는 방법은 있다. 몇 가지를 소개한다.

▽공연 한 시간 전에 가보라=파리의 대부분 공연장은 공연 시작 1시간 전부터 팔고 남은 티켓을 싸게 판다. 싸게는 5유로짜리도 있다. 어차피 1시간 후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에 좋은 자리, 나쁜 자리 구분 없이 줄 선 순서대로 나눠 주는 경우도 많았다. 운이 좋으면 몇 천 원에 VIP티켓도 얻을 수 있다.

▽‘나이’가 돈이다=많은 나라에서는 학생증이 할인권 역할을 하지만, 프랑스에선 젊은이에겐 신분증도 할인쿠폰이다. 일반적으로 26세 미만에겐 티켓 가격이 거의 절반까지 할인되기도 하는데 외국인에게도 적용되므로 나이를 증명할 수 있는 여권이나 신분증을 챙겨 가면 좋다.

▽마티네 공연을 노려라=유난히 마티네가 많은 프랑스에서는 낮 공연을 권하고 싶다. 정도에 차가 있긴 하지만 저녁 공연보다 마티네 공연의 가격이 싼 예가 많다.

▽무료 공연을 놓치지 말라=프랑스의 공연정보지들을 살펴보면 ‘젊은이 페이지(Pour Les Jeunes)’라는 제목으로 호주머니가 가벼운 젊은 층들이 즐길 만한 공연을 소개하는 난이 별도로 마련돼 있는 경우가 많다. 클래식, 연극, 콘서트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소개되는데 젊은 층을 겨냥한 만큼 재미 위주의 공연이 많으며 보통 10유로 안팎이거나 무료인 것도 많다. 참고로 ‘무료 공연(Ent Libre)’라는 약자는 알아두자.

▽파리 시내 성당을 가보자=파리에서 흔히 마주치는 건물 중 하나가 화려한 성당. 아름다운 내부전경과 편리한 입지조건으로 많은 성당이 시민들의 문화공간 역할도 한다. 특히 연말연시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가스펠 공연, 파이프오르간 연주, 클래식 콘서트, 오케스트라 연주 등 시민을 위한 무료 연주회가 끊임없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