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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으로 신기술 들춰보기]원단 안 자르고 두께 재기

입력 | 2007-12-28 02:57:00


“옷감의 두께를 재는 장비인데 고장이 났어요.”

2005년 말 화인기계전자의 정자영 사장이 독일제 측정 장비를 들고 한국원자력연구원 방사선계측기랩 하장호 박사를 찾아왔다. 옷감 두께를 재는 데 방사선을 연구하는 실험실이라니?

사연은 이러했다. 옷감의 품질은 원단의 두께가 좌우하기 때문에 원단의 두께가 기준보다 얇거나 두꺼우면 원단을 다시 뽑아야 한다. 업계에서는 보통 원단의 일부를 잘라내 무게를 재는 방식으로 원단의 두께를 가늠하는데, 무게를 재는 데 사용하는 원단과 불량률을 고려해 보통 10% 정도 넉넉하게 원단을 짠다.

정 사장은 원단을 따로 자르지 않고 방사선으로 원단의 두께를 바로 정밀측정하는 1억 원짜리 장비를 독일에서 들여왔다. 하지만 금세 고장이 났고 수입기계라 수리비도 만만찮았다. 그는 방사선을 이용하는 장비라는 점 하나를 단서로 해 무턱대고 한국원자력연구원을 찾아온 것이었다.

마침 방사선을 이용한 센서를 개발하고 있던 하 박사팀은 이 장비를 쉽게 고쳐줬고,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김용균 교수팀과 함께 이 장비를 국산화하기로 의기투합했다. 그리고 12월 초 결실을 이뤄냈다.

이 측정장비는 방사성 물질인 크립톤(Kr)-85에서 방출되는 베타선을 이용해 옷감의 두께를 잰다. 베타선을 옷감에 쪼이면 베타선의 일부는 원단을 이루는 원자들과 부딪쳐 여러 방향으로 튀고, 나머지는 원자 사이를 그대로 통과해 센서에 흐르는 전류를 미세하게 변화시킨다. 방사선이 통과한 원단의 두께에 따라 전류의 세기가 달라지는 정도가 통계적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를 거꾸로 계산하면 섬유의 두께를 알아낼 수 있다.

이번에 개발된 측정장치는 원단의 두께를 오차 ±1% 이내로 측정한다. 1mm 두께의 원단인 경우 0.01mm까지 정확히 잰다는 뜻이다. 원단을 뽑으면서 바로 두께를 재고 기준치에 맞게 조절하기 때문에 두께를 재느라 잘라야 했던 원단을 아낄 수 있다.

하 박사는 “설계와 제작을 모두 국내에서 해 수입제품의 절반 가격에 측정장치를 공급할 수 있다”며 “베타선을 이용해 두께를 재는 기술은 섬유뿐 아니라 제지, 필름, 플라스틱 같은 산업분야에도 널리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안형준 동아사이언스 기자 but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