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을 내는 미생물을 만들려면 유전자 부품번호 T-123과 SR-2가 필요합니다.”
2025년 주문형 미생물 제작회사인 ‘신소믹스’의 유전자회로설계부 회의실. 10여 명의 연구원이 한국의 전통 천연염료인 쪽빛염료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미생물을 만들기 위해 복잡한 회로도와 유전코드를 둘러싸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여러 가지 전자부품을 이용해 회로를 만들 듯 원하는 기능을 가진 새로운 생명체를 마음대로 디자인하는 시대를 가상으로 그려 봤다. 하지만 이런 설정이 소설 같은 일만은 아니다.
11월 초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는 이미 기능이 밝혀진 미생물의 유전자를 부품 삼아 새로운 생명체를 설계하고 이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거나 실제로 만드는 국제유전공학장치(iGEM) 대회가 열렸다.
4회째를 맞는 올해 대회에는 세계 10여 개국 56개 대학팀 학생들이 참여해 파도타기 응원을 하는 축구경기장 관중을 흉내 내듯 색을 바꾸는 미생물, 다양한 맛과 색의 요구르트를 만들어 내는 유산균 같은 기발한 생명체의 유전자 설계도가 출품됐다.
이들의 연구는 지구에 이미 존재하는 생명체의 유전자 일부를 변형시키는 이전의 유전공학과는 차원이 다르다. 게놈 전체를 새로 설계해 지금까지 지구에 존재하지 않던 전혀 다른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이른바 ‘생명 2.0 시대’의 연구다.
최근 미국의 생명과학자 크레이그 벤터 박사가 마이코플라스마 게니탈리움이라는 미생물의 생존에 꼭 필요한 유전자를 인공으로 합성해 새로운 생명체를 곧 만들어 내겠다고 발표했다.
과학자들은 그의 연구를 인간이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는 시대가 머지않았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여긴다.
과학동아 1월호는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과학자들의 생명 2.0 시대를 향한 ‘무한도전’을 특집으로 다뤘다.
안형준 동아사이언스 기자 but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