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점심 메뉴는 콩나물밥이었다.
때는 2003년 3월 말, 장소는 청와대 구내식당. 배식을 받던 그는 식판에 떨어진 음식을 무심코 손으로 집어 먹었다. 그 장면이 찰칵…. 사진 속의 그는 음식을 손에 쥔 채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이 사진은 신문에 실렸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당시는 노 대통령 취임 초.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주로 ‘와, 대통령이…. 정말 소탈하다’였다. 하지만 ‘대통령이 손으로 음식 집어 먹는 모습이 신문에 나는 것은 좀 창피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노 대통령의 행동은 소탈한 것이었을까, 국민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었을까.
당시라면 논란이 있었겠지만 5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은 결론이 나와 있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국민을 낯 뜨겁게 하는 언행을 무수히도 보여 줬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안에서의 막말도 모자라 외국 대통령을 만나서까지 국내 언론을 비난했다. 9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원하는 답변을 하지 않는다고 두 나라 방송이 생중계를 하는 가운데 허허 웃으며 천장을 바라보고, 부시 대통령에게 되묻는 외교적 결례까지 했다.
이제 임기 말, 고향에 3991m²(약 1200평)의 터에 연면적 933m²(약 280평)의 저택을 짓는 노 대통령 주변에서는 측근 사면 얘기까지 나온다. 제발 이것이 국격(國格)을 떨어뜨리는 마지막이기를.
대통령은 국가의 품격을 상징한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무엇보다 전임자가 추락시킨 국격을 제자리로 찾아 주고 고양(高揚)해 주었으면 하는 심정이다.
노 대통령 못지않게 국격에 생채기를 낸 것은 측근들의 격이었다. 국회에서, 해외에서 막말과 폭언을 퍼부은 국무총리도 있었고, 청와대 앞에 버젓이 횟집을 낸 대통령 특보도 있었다. 신분을 노출하면서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를 해결했다고 자랑한 국가정보원장은 어떤가. 그런 국정원장을 격려하기 위해 국정원을 방문한 노 대통령이 원장과 함께 파안대소하며 찍은 사진이 신문에 나자 한 국정원 인사는 “한마디로 창피하다”고 했다.
불꽃 튀는 취재 현장과 기자실의 물밑 취재경쟁이 뭔지 모르는 삼사류 기자 출신이 입안하고 밀어붙인 ‘취재 대못질’은 콤플렉스의 표현은 아니었을까. 그런 측근들이 훈장을 받는다고 격이 올라가는 건 아니다. 이 당선자의 측근들이 두고두고 돌아봐야 할 반면교사가 아닐 수 없다.
이 정권에서 국격이 추락한 또 하나의 주요 요인은 대통령과 실세 측근들을 견제해야 할 국회의 격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국회 본회의에 참석한 이해찬 국무총리가 눈을 치켜뜨며 야당 의원들에게 호통을 치는데도 침묵했거나 오히려 두둔한 여당 의원들은 결국 자기 발등을 도끼로 찍은 셈이다. 아무리 몸싸움을 한다고 국회의원이 몸을 날려서 같은 의원들을 밟고 넘어가는 장면은 역대 어느 국회에서도 볼 수 없었다. 그야말로 최홍만과 표도르도 울고 갈 ‘격투기 국회’다.
격 떨어지는 이들이 생산하고 추진한 국정의 질이 제대로 됐을 리 없다. 아니, 국정의 질은 접어 두고 도무지 창피해서 못살겠다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차기 정부를 이끌 인사들이 유념했으면 한다.
박제균 정치부 차장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