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제(경제)만 알았어도 내가 대통령 하는 긴데, 그 놈의 갱제(경제) 때문에….”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은 대통령 선거운동 때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우스갯소리를 많이 했다. 본인이 대통령이 하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경제를 아는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한 것이다.
박 전 부의장은 올해 초 한나라당 경선전이 시작되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모두에게서 ‘러브콜’을 받았다. 그는 나중에 “박 전 대표도 너무나 훌륭한 분이지만 ‘경제’가 시대정신이라는 확신 때문에 이 당선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온화한 성품의 5선 의원인 그는 경선 때 박 전 대표 캠프와 갈등이 생기면 해결사 노릇을 해 ‘부드러움의 미학’을 보여 줬다는 얘기를 들었다. 경선 룰과 관련해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도, 이 당선자의 처남 김재정 씨가 박 전 대표 캠프 의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을 때도 당의 화합을 깨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며 캠프 내 강경파를 설득했다.
그는 한나라당 원내총무, 대표최고위원 등을 지낸 오랜 정치경력으로 쌓은 인맥을 이용해 주요 인사 영입에도 많은 역할을 했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와 수시로 만나 영입에 성공했고 본선 막판 정몽준 의원 영입에도 힘을 보탰다.
검사 출신인 그는 상대의 네거티브 공세에 대해서도 든든한 버팀목으로 중심을 잡았다. 캠프 선대위원장으로 들어오자마자 각종 의혹과 관련해 객관적인 사실을 보고받은 뒤 “내가 검사의 시각에서 봤을 때 아무런 문제가 없다. 확신을 갖고 대처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경선 때 서울 강남구 도곡동 땅 의혹, 본선 때 BBK 의혹에 대해서도 대응 방안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주변에서 공을 치켜세우면 “아이고, 내가 무신(무슨)”이라며 손을 내젓는다.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그의 구수한 말투와 민주자유당 시절 최장수 대변인의 유머는 상대를 무장해제시켜 웃음을 짓게 만든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그는 최근 근황을 묻자 “전쟁이 끝나고 지금은 무위도식하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최근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변의 추천으로 대통령직인수위원장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박 전 부의장은 “선거가 끝나고 일부러 사람도 만나지 않고 당선자와도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 애초부터 선거가 끝나면 고향에 내려가 푸른 남쪽 바다를 보면서 싱싱한 생선 안주에 소주 한잔을 마시는 게 꿈이었으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 4월 총선에서 고향인 남해-하동에서 지역구 6선에 도전한다. 편하게 비례대표로 출마하라는 주변 의견도 있지만 “고향을 놔두고 왜…”라며 지역구를 누비고 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