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촌토성의 올림픽경기장에서 오소리 한 마리가 방랑하고 있습니다. 야생이던 짐승을 포획해서 풀어 놓았는지, 아니면 제 발로 들어와 살게 됐는지 알 수 없습니다. 지난 여름날 늦은 저녁, 공원을 산책하다가 조각공원 잔디밭을 황망히 가로질러가는 오소리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조각공원 건너편에는 8차로 도로를 따라 악질적인 도시의 소음이 끊임없이 토악질을 해댔고 휘황한 불빛이 깨진 유리 파편처럼 살벌하게 명멸하고 있었습니다. 비정한 도시 한가운데서 산책로를 오가는 사람을 두렵고 웅크린 시선으로 훔쳐보면서 서둘러 나무숲을 찾아가는 오소리는 너무나 울적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그 짐승의 빈약하고 보잘것없는 생활 영역을 침해하지 않아도 오소리가 살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칫 한 발짝 잘못 내디디면 치명적인 도시의, 가시 돋친 장애물이 횡행합니다. 혼자서 거대한 위협과 맞서는 오소리의 눈빛이 암울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산책을 마치고 아파트로 돌아와 승강기에 오릅니다. 그 안에서 또 다른 한 마리의 오소리를 발견합니다. 아파트의 층수를 가리키는 숫자 버튼 아래쪽에 놓인 작은 나무상자입니다. 키 작은 어린이가 혼자 승강기를 탔을 때 굳이 까치발을 하지 않더라도 상자에 올라서면 원하는 층수의 버튼을 수월하게 누를 수 있겠지요. 혼자 집으로 돌아온 외로운 아이는 책가방을 거실에 던지고 냉장고 앞으로 달려갑니다.
거기에 어머니가 기다립니다. 어머니의 존재는 바로 냉장고 앞문에 부착된 어머니의 쪽지편지를 의미합니다. 아이는 쪽지가 지시하는 대로 냉장고 안의 음식을 가만가만 꺼내어 거실로 가져갑니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켜거나 만화책을 꺼내어 혼자 중얼거리면서 차갑게 식은 음식을 먹습니다.
아이는 그때부터 힐끗힐끗 전화를 곁눈질하기 시작합니다. 쪽지편지에서 지시한 것에 빗나가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려는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어머니는 자식에게 해야 할 일은 책잡힐 것 없이 모두 했다고 흡족해할지 모르겠습니다.
몽촌토성 올림픽경기장에는 혼자 사는 오소리를 보호해 달라는 호소문을 적은 게시판이 서 있습니다. 어머니도 아이를 위해 냉장고에다 쪽지편지를 붙여 두었습니다. 아이나 오소리나 일찍부터 제 고유한 삶의 모습에서 쫓겨나 방치돼 있는 처지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작가 김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