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져도 좋다.”
경기에 임하는 두 사령탑의 마음은 똑같았다. 오히려 진 팀에 여유가 넘쳤고 이긴 팀에는 씁쓸함이 남았다.
30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경기.
김호철 현대캐피탈 감독은 “외국인 선수 안젤코가 이끄는 삼성화재를 상대로 우리 팀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점검해 보겠다.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은 “안젤코가 나흘간 휴가를 다녀와 컨디션이 좋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 무리하게 투입하면 역효과가 생길 수 있다”며 기용하지 않았다.
용병 제도가 생긴 2005∼2006시즌부터 겨울리그에서 두 팀이 경기 내내 외국인 선수 없이 대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외국인 선수가 없는 코트에선 현대캐피탈이 한 수 위였다. 현대캐피탈은 이선규(14득점), 박철우(13득점), 후인정(10득점) 트리오를 앞세워 장병철(16득점)이 분투한 삼성화재를 3-0(25-21, 25-17, 25-22)으로 완파했다.
현대캐피탈은 삼성화재의 9연승을 저지하며 5연승을 달렸다. 현대캐피탈은 6승 3패로 3위, 삼성화재는 8승 1패로 1위.
높이에서 승패가 갈렸다. 현대캐피탈은 리베로를 제외한 토종 주전 6명의 평균 키가 197cm, 삼성화재는 190.2cm. 높이의 우위를 증명이라도 하듯 현대캐피탈은 상대 공격을 역대 한 경기 최다인 24개(종전 22개)의 블로킹으로 차단하며 득점으로 연결했다. 센터 이선규는 8개, 라이트공격수 박철우는 6개의 블로킹으로 맹위를 떨쳤다.
경기가 끝난 뒤 김 감독은 “이겨서 기분은 좋지만 신 감독에게 속은 기분이다. 최강 삼성화재를 상대로 우리 전력을 제대로 파악해 외국인 선수를 선발하려 했는데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됐다”며 아쉬워했다.
신 감독은 “오늘 지더라도 내년 1월 1일 대한항공, 5일 LIG손해보험 경기가 플레이오프 안정권을 가름한다고 판단했다. 무리하게 안젤코를 투입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초청팀 경기에선 상무가 한국전력을 3-0으로 제압했다.
여자부에서는 흥국생명이 거포 김연경(24득점)을 앞세워 KT&G를 3-0(25-17, 25-20, 25-19)으로 꺾고 7승 1패로 1위에 올랐다. KT&G는 첫 패(6승)를 안으며 2위.
KT&G 최광희(33)는 이날 은퇴식을 하고 코트를 떠났다.
대전=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촬영 : 최배진 동아닷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