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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895년 후버 前FBI국장 출생

입력 | 2008-01-01 02:58:00


그는 도박 중독자이면서 동성애자였다. 동시에 8명의 미국 대통령을 막후 조종한 ‘밤의 대통령’이었다. 1895년 1월 1일 태어난 존 에드거 후버는 29세의 젊은 나이에 미국연방수사국(FBI) 국장에 올라 1972년 집무실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48년간 미국을 쥐락펴락한 실력자였다.

역대 대통령들은 그를 두려워했다. 존 F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 같은 대통령들은 그를 제거하려고 시도했다. 그때마다 그는 ‘X파일’을 들이대며 협박했다.

후버의 연인이자 FBI 부국장이던 클라이드 톨슨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한 마르크 뒤갱의 소설 ‘대통령을 갈아치우는 남자’에선 후버의 정치 공작과 역대 대통령의 숨겨진 스캔들의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후버의 힘은 도청에서 나왔다. 그는 도청으로 지도층 인사들의 비리와 사생활 정보를 캐내 무기로 삼았다.

후버는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파시스트와 공산주의자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서 광범위한 도청을 허락받았다.

그러나 후버는 영부인 엘리노어의 부적절한 관계까지 파고들다가 해임 위기를 맞는다. 루스벨트가 갑작스레 죽음을 맞는 바람에 후버는 살아남는다. 후임인 해리 트루먼 대통령도 부통령 시절 불법 정치자금으로 발목을 잡혀 후버를 안고 갈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이 여러 차례 바뀌어도 후버의 힘은 전혀 줄지 않았다. 그는 범죄조직 마피아를 소탕하려는 케네디 대통령 형제의 발목을 잡기 위해 그들의 부모가 마피아와 연관된 증거를 제시한다.

후버가 남긴 상처는 적지 않았다. FBI의 ‘국내 정치사찰’은 후버 국장 시절 FBI가 흑인 민권운동 지도자인 킹 목사와 반전주의자, 백인우월주의자들의 극우비밀결사인 KKK 등을 상대로 불법적인 감시망을 가동해 온 사실이 1976년 드러나면서 금지됐다. 그러나 9·11테러 이듬해인 2002년 5월 미 법무부가 FBI의 ‘국내 스파이 활동’을 사실상 허용하면서 ‘후버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반발이 일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불법감청을 묵인 방조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임동원 신건 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해 12월 20일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1일자로 두 사람을 특별 사면했다. 그들은 대법원에 상고했다가 황급히 취하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그들에 대한 사면이 도청에 대한 사면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