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대북 포용정책에 따라 집권기간 중 대북 지원 규모를 크게 늘렸다. 지난해 6월 29일 전북 군산항에서 북한에 차관으로 보낼 쌀 3000t을 싣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김대중(DJ)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도 안 된 1998년 6월 22일 북한 잠수정의 동해안 침투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대북 햇볕정책을 기치로 내건 김대중 대통령은 이튿날 국무회의에서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 때 정부가 졸속으로 처리해 문제가 있었다”며 신중한 대응을 지시했다. 임동원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도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이번 사건에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변한 대북 경고조차 못하고 북한 눈치를 본 꼴이 됐다. 이 같은 상황은 1998년 8월 31일 북한의 대포동 1호 미사일 발사와 1999년 6월 15일 북한 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으로 인한 연평해전 발생 때도 이어졌다. DJ는 서해교전 사실을 보고받은 뒤 “전쟁이 나면 북한이 패배하겠지만 우리도 막대한 피해를 본다”며 “북한이 개혁 개방으로 나서도록 하기 위해 냉전 일변도의 정책을 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잘못된 시작… 햇볕정책 정경분리 원칙
‘평화 화해 협력의 실현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을 목표로 햇볕정책을 추진한 DJ 정부는 남북 간 정치, 군사적 갈등은 접어두고 남북경협과 사회문화, 인도적 교류를 먼저 활성화해 북한의 개혁 개방을 이끌어 낸다는 ‘정경(政經) 분리’ 원칙을 견지했다. 남북 간 신뢰가 쌓이면 북한의 정치적 변화가 따라올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었지만 북한은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햇볕정책은 평화의 수단일 뿐 목표가 아니라며 대북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DJ 정부는 “교류협력 확대라는 기본 원칙을 돌발사태 때문에 훼손할 수 없다”며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
2000년 6월 제1차 남북 정상회담 후 DJ는 햇볕정책 추진에 더욱 속도를 냈다. DJ는 2000년 9월 11일자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 “남북 평화협정 체결이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03년 이전에 가능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2002년 1월에는 햇볕정책의 기본 원칙으로 내세웠던 정경 분리마저 포기하고 민간사업인 금강산 관광사업에 정부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해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DJ는 사상 처음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덕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개인적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DJ의 기대와 설명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2002년 6월 NLL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의 선제 기습공격으로 한국군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하는 서해교전이 발생했다.
또 2003년 대북송금 특별검사팀 수사에서 DJ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 대가로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직전 북한에 4억5000만 달러를 송금한 사실이 드러나 남북관계를 경색시켰다. 그리고 DJ 정부의 ‘뒷돈’ 제공은 북한이 남한 정부뿐 아니라 민간 접촉에서도 ‘경제적 보상’을 요구하는 못된 버릇을 갖게 만들었다.
○ ‘퍼주기 논란’ 부른 참여정부 대북정책
햇볕정책을 이어 받은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 역시 남북경협을 명분으로 한 대북 투자와 지원에 집중됐다. 대북송금 특검을 통해 DJ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고 북한에 뒷돈을 준 사실을 확인하고도 노 대통령 역시 일방적인 대북 지원을 이어간 셈이다.
2006년 10월 9일 북한의 핵실험 강행으로 한반도는 극도의 안보 위기 상황에 놓였고 대북 지원과 남북 경제협력 사업을 중단하거나 축소하고 대북 포용정책을 크게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노 대통령은 “북핵 실험으로 야기된 한반도의 위기는 반드시 평화적인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 큰 틀에서 대북 평화번영 정책의 기본 원칙은 지켜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2006년 11월 6일 한명숙 국무총리가 대신 읽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평화는 모든 것에 우선하는 최상의 가치”라며 “어떤 상황에서도 북한과 ‘대화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이 안보 상황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대화와 지원만 강조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사회적 논란과 갈등을 불러온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 같은 비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는 출범 이후 2006년 말까지 4년 동안 DJ 정부(5459억 원)의 2.3배에 이르는 1조2400억 원을 북한에 무상 지원했다.
노 대통령은 임기 말에 남북 정상회담을 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2007년 10월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을 강행했다. 정상회담에서 △개성공단 활성화 △해주항 특구개발 △조선협력단지 건설 등에 합의했으나 북핵 문제를 제대로 짚지 못한 상황에서 대북 퍼주기를 계속하기로 약속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10년 동안의 포용정책이 효과를 보지 못한 채 북한은 여전히 북핵과 같은 안보 문제에서 미국을 유일한 상대방으로 인정하는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을 유지하며 남한은 경제적 지원과 투자 요구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두 정부는 북한이 원하는 것은 주고 남한이 원하는 것은 받아내지 못하는 전략적으로 실패한 대북정책을 폈다”며 “이러한 전략적 실패가 북핵이나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 등에서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 北에 얼마나 줬나
두 정부서 4조+α 10년새 10배 늘어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대북 투자와 지원 우선 원칙에 따라 집권 기간에 대북 지원 규모를 꾸준히 늘렸다.
통일부의 ‘남북협력기금 사업비 집행 현황’에 따르면 DJ 정부가 출범한 1998년 875억 원이었던 사업비는 2000년 5306억 원, 2001년에는 5544억 원까지 늘어났다.
노무현 정부 첫해인 2003년에는 4420억 원이었다가 2004년 3892억 원, 2005년에는 6517억 원으로까지 많아졌다. 통일부 관계자는 “2007년 사업비 집행 금액은 8000억∼9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2008년에도 비슷한 규모의 예산을 집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쌀과 비료 등 정부와 민간단체들이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지원한 금액도 DJ 정부 5년 동안 8560억 원,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지난해 11월 말까지 1조6200억 원 등 10년 동안 2조4760억 원에 이른다고 통일부는 밝혔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정부의 대북 지원 규모가 이보다 훨씬 크다고 주장해 왔다. 한나라당 정책위원회는 지난해 10월 “10년 동안 정부의 대북 지원 규모는 공식 확인된 것만 6조913억 원”이라며 “정부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동안 북한은 핵실험을 감행해 안보 불안이 극대화됐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대북지원금에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북한에 불법 송금한 4억5000만 달러 △현대가 금강산 관광 대가로 지불한 4억6564만 달러 △금강산 관광시설 수익금 1억3297만 달러 △개성공단 토지이용료 2200만 달러 등을 포함시켰다.
통일부는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사업 비용은 민간기업이 경제논리에 따라 투자한 정상적인 거래금이라고 반박했다. 북한에 불법 송금한 4억5000만 달러에 대해서도 “현대가 북한에 경제행위의 대가로 지급한 돈으로 대북 지원금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00년 정상회담을 앞두고 현대가 북한에 건넨 돈은 정상회담에 대한 대가의 성격이 짙고, 이는 남북관계에 있어서 좋지 않은 관행으로 이어졌다는 견해가 많다.
실제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3월 이 사건을 수사한 대북송금 특별검사 수사팀은 “현대가 북한에 건넨 돈은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정부가 적극 개입해 비밀스럽게 보낸 것으로 정상회담과의 연관성을 부인할 수 없다”는 수사결과를 내놨다.
현대 측에 대북송금을 요청하고 불법 송금에 관여했던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과 임동원 국가정보원장 등 정부 관계자들도 모두 대법원에서 직권남용과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의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