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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임성호]진짜 사면받아야 할 사람들

입력 | 2008-01-04 03:01:00


현 정부는 임기 끝까지 반면교사의 교훈을 주려나 보다. 이번엔 특별사면 남용의 건이다. 형집행 면제, 형선고 실효(失效), 복권 등의 사면은 사법부가 내린 형량을 대통령이 고치는 것이므로 자칫 사법부의 권위와 사법적 정의, 공정성을 해칠 위험성이 있다. 또한 대통령의 자의적 법 운용, 사면 결정을 둘러싼 사회 갈등, 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 추락, 법체계의 기준에 대한 혼동 등 근본적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사면권 행사가 과도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는 일반론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1월 1일자로 정치인, 전 공직자, 경제인 등 75명에 대한 특별사면이 발표됐다. 사면 대상자들의 면면을 볼 때 사면권 남용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에 대한 보은(報恩) 사면이자 김대중 전 대통령 측근에 대한 총선용 사면이라는 비판을 면키 힘든 면면이다. 취임 전에는 사면권 남용을 막겠다고 공언했던 노 대통령이 8번째 특사를 내렸다. 이는 김영삼(8번), 김대중(6번) 전 대통령에 비해 줄어든 것이 아니다. 게다가 매번 측근 인사들을 사면해 원칙과 기준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법부의 권위 해치지 말아야

물론 사면 논란이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에서도 특정인에 대한 사면은 정치적인 갈등을 불러올 때가 있다. 근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딕 체니 부통령의 전 비서실장 루이스 리비를 사면해 정치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전 부인을 통해 거액의 선거자금을 기부한 기업인 마크 리치를 사면해 정가를 뜨겁게 달구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반체제단체 관계자들에 대한 인권침해로 유죄 판결을 받은 마크펠트 전 미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을 사면해 비난을 받았다. 가장 유명한 사례로, 워터게이트사건으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사임한 덕에 대통령직을 승계한 제럴드 포드는 전임자를 사면해 마음의 빚은 갚았을지 몰라도 리더십에 치명상을 입었다.

그러나 이런 미국의 예외적 사례를 보고 오해해선 곤란하다. 미국에서도 대통령의 사면은 정치적인 것으로서 자의성 시비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니 우리만 욕먹을 필요가 없다고 자위한다면 착각이다. 간혹 공정성 시비를 일으키는 것이 사실이지만 미국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주목할 만한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역사적으로 사면 대상자가 현격히 줄고 있다. 과거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2819명, 트루먼은 1913명, 아이젠하워는 1110명의 사면을 단행했다. 그 후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만 보면 닉슨 863명, 레이건 393명, 클린턴 396명, 부시 113명(작년 6월 현재) 등 전반적인 감소가 이어졌다. 단임에 그쳤지만 아버지 부시는 74명의 사면만 기록했다. 대통령-의회 관계가 좀 더 균형을 이루어감에 따라 대통령의 사면이 줄어든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선 오히려 건수와 정치공방이 커져 왔다는 데 사안의 심각함이 있다.

둘째, 미국에서 사면은 주로 연방정부 공권력에 위해를 가한 도전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원칙이 있다. 초대 재무장관 해밀턴은 반역자들을 적절히 사면함으로써 사회 안정을 이룰 수 있다는 논리로 사면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 과세 불만으로 터진 ‘위스키 반란’의 연루자들이 최초의 사면을 받은 이후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인들, 급진적 노동운동가인 호파, 제2차 세계대전 중 대(對)미군 선동방송 주역인 도쿄 로즈, 베트남전 병역 기피자들, 좌익 과격단체에 세뇌당해 은행 강도가 된 언론재벌 손녀 허스트 등 주로 연방정부에 저항한 사람들이 사회 통합과 안정 차원에서 혜택을 받았다. 반면 대통령과 어느 정도라도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이 사면 받는 경우는 매우 예외적인 것으로 뜨거운 정치 논란을 일으키기 때문에 가급적 자제한다.

美, 반대자에 혜택 사회통합 활용

우리나라의 대통령도 특별사면에 앞서 좀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사회 통합에 필요한, 정말 특별한 경우인지 반추해야 하고 논란의 여지가 있다면 대통령 독단으로 하는 특별사면보다는 국회의 동의를 요하는 일반사면을 택해야 한다. 정말 사회 통합에 기여할 수 있는 사면이라면 국회도 반대는 안하지 않겠는가.

임성호 경희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