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지(誌)는 미국 대중음악계의 살아 있는 권력이다.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려야 스타로 인정된다. 하지만 빌보드(광고판)라는 이름이 의미하듯 이 이 잡지의 시작은 음악과는 거리가 멀었다.
1894년 미국 신시내티에서 인쇄업을 하던 윌리엄 도널드슨과 제임스 헤네건은 광고 전문잡지를 만들기로 했다. 인쇄 광고 시장은 갈수록 커지고 있었지만 이를 소개할 전문지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해 11월 1일 8쪽짜리 월간지 ‘빌보드 애드버타이징’이 탄생했다. 연간 구독료는 90센트. 도널드슨과 헤네건은 창간사에서 ‘광고주와 전단지 인쇄업체, 광고판 제작사, 광고대행사를 위한 잡지’라고 밝혔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판매 실적은 신통치 않았다. 공동 창업자인 헤네건은 편집 방향을 놓고 도널드슨과 갈등하다 경영에서 손을 뗐다. 창간 4년 만에 폐간 위기까지 몰렸던 빌보드는 도널드슨 독자대표 체제로 바뀌면서 회생의 길로 들어섰다. 도널드슨은 광고전단뿐 아니라 각종 전시회, 서커스, 야구경기 일정 등도 싣기로 했다. 1909년부터는 당시 미국을 열광시켰던 영화와 라디오 프로그램도 게재했다.
도널드슨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축음기에 주목했다. ‘녹음된 음악’이 ‘피아노 연주자’를 밀어내고 있었다. 음악 산업이 태동한 것이다. 1929년 미국의 음반 시장은 7500만 달러 규모로 커졌다.
1936년 1월 4일, 빌보드는 3개 라디오 채널에서 가장 많이 나온 팝 음악을 집계한 ‘차트 라인’을 실었다. 4년 뒤에는 ‘최다 판매 음반’ 차트도 발표했다.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고 가수들은 전국적인 경쟁 체제에 돌입했다. 오늘날의 빌보드 차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현재 빌보드는 매주 30개 이상의 차트를 발표한다. 여기에는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순위도 포함된다.
빌보드 차트 1위를 가장 많이 차지한 가수는 전설적인 영국 그룹 비틀스. 1964년 4월 4일 싱글 차트의 상위 5곡을 한꺼번에 점령하는 등 지금까지 20곡을 1위에 올렸다.
가장 오랫동안 1위를 차지한 곡은 머라이어 캐리와 보이스투멘이 부른 ‘원 스위트 데이’(One Sweet Day·16주), 최장 기간 앨범 차트에 오른 음반은 핑크플로이드의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Dark Side of the Moon·741주)이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