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대전시청 공무원 노조원들이 기름유출 피해를 본 충남 태안군 소원면 구름포해수욕장에서 돌에 달라붙은 기름을 제거하고 있다. 연합
"삼성은 뭐 하는 겁니까?"
사상 최악의 원유 유출사고를 일으킨 삼성에 대해 충남 태안 지역 주민들의 원성이 커지고 있다. '발 등의 불을 끄느라' 여념이 없었던 사고 피해자들이 이제 다소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자 사고 원인 제공자인 삼성에 대해 비난과 원망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
반면 대선정국, 삼성 비자금 파문 등과 맞물려 이번 사고 결과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몰라 전전긍긍해온 삼성은 이제부터라도 적극적으로 사태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임직원은 왜 안 보이나"
삼성에 대한 비난 여론은 자원봉사자 수가 늘어날수록 커져 왔다.
태안지역 주민들은 물론이고 전국에서 찾아온 수십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처참한 사고 현장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돌멩이 하나까지 닦고 있는 동안 어느 기업보다도 홍보에 적극적으로 알려진 삼성이 공식인 입장을 전혀 밝히지 않았기 때문.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은 "자칫 먼저 잘못을 인정할 경우 추후 민형사상 책임 범위가 넓어질까 봐 몸을 사리는 게 아니냐"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사고 직후에는 당장 화급한 방제작업에 온정신이 쏠려 이 같은 '삼성 비난' 여론이 태안 밖으로는 확대되지 않았으나 이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자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급속히 불거지고 있다.
소원면 만리포 주민대책위원회는 최근 성명을 내고 "주민들과 태안의 청정해역을 사랑하는 많은 자원봉사자, 군경 등이 검은 기름을 걷어내며 뜨거운 동족애를 나누고 있는데 삼성 임직원들의 모습은 왜 보이지 않느냐"며 "삼성은 즉시 만리포의 기름제거 작업에 동참하고 피해주민 배상과 피해지역의 항구적 복구 방안을 내놓을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요즘 태안에서는 삼성을 비난하는 문구가 적힌 방제복을 착용한 자원봉사자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비자금 정국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일부러 사고를 낸 게 아니냐"는 음모론마저 고개를 들고 있는 분위기.
●삼성 직원들, '삼성' 표시 지우고 자원봉사
하지만 삼성도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다.
4일 삼성에 따르면 사고 발생 다음날인 지난해 12월 8일부터 지금까지 대전 및 충남 지역 계열사들을 중심으로 매일 직원 1000~1500명을 피해 현장에 보내 방제작업을 벌여 왔다.
하지만 자원봉사에 참여한 다른 기업이나 단체, 공공기관 등이 자신의 소속을 떳떳이 밝히는 것과 달리 삼성 직원들은 혹시라도 격앙된 주민들을 자극할까 신분을 숨기고 방제작업을 해왔다.
일부 직원은 방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섬에 들어갔다가 며칠 동안 나오지 못하는 등 나름대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삼성 관계자들은 하소연하고 있다.
이와 함께 매일 2억~2억5000만원 상당의 물품을 현장에 전달하고 지난 달 말에는 충남지역 삼성사업장 명의로 충남도에 방제자금조로 50억원을 기탁하기도 했지만 매번 외부에는 비밀에 부쳤다.
삼성 관계자는 "비난 여론이 일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형식적인 사과보다는 당장의 방제에 집중하고 나중에 명확한 사과와 함께 주민들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대책을 내놓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보상책을 마련하겠지만 섣불리 대책을 발표했다가 졸속이라는 비난을 살 우려가 있다"며 "폭넓게 여론을 수렴하고 있으며 조만간 그룹 차원의 대책이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태안해경은 2일 이번 사고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삼성중공업 소속 해상크레인 선장 김 모(39·구속)씨 등 관련자 5명을 해양오염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입건해 검찰에 송치했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촬영 : 김재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