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휴대전화 통화연결음을 인순이의 ‘거위의 꿈’으로 바꾸었다. 카니발의 노래를 리메이크해 인순이가 부르면서 원곡보다 훨씬 인기를 끌고 있다. 카니발의 이적과 김동률이 직접 가사를 짓고 곡을 붙인 노래이지만 처음부터 인순이를 위해 생겨난 노래 같다. 남루한 현실 속에서도 꿈을 간직하고 운명을 극복하는 내용의 가사가 인순이의 삶과 절묘하게 오버랩된다.
혼혈과 학력 차별 이긴 인순이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그 꿈을 믿어요/나를 지켜봐요/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인순이는 지난해 학력검증 폭풍이 일 때 “나만은 비켜가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가수 활동을 시작한 뒤 경기 포천 일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인순이의 프로필에 언제부터인지 ‘포천여고 졸업’이라는 학력이 따라붙어 사실인 것처럼 굳어졌다. 인순이의 최종 학력은 경기 연천군 청산중학교 졸업. 그는 중학교 때 한 학기를 마치면 헌책방에 교과서를 팔아 가족들이 며칠 끼니를 때울 정도로 궁핍하게 살았다. 고교 입학시험장까지 갔다가 집안 형편을 생각해 발길을 돌렸으니, 엄밀하게 말하면 고교 문턱은 밟아 본 셈이다.
그는 한 공연에서 “바깥에 나가면 항상 불안했어요. 피부색이 달라 어딜 가나 눈에 띄었거든요. 고등학교를 나왔더라도 평범한 직장을 갖기는 힘들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혹 때론 누군가가/뜻 모를 비웃음 내 등 뒤에 흘릴 때도/난 참아야 했죠’라는 가사는 우리 사회의 편견과 차별을 겪으며 성장한 혼혈 여성의 비통한 고백처럼 들린다.
그는 가창력 하나로 중졸 학력과 혼혈의 벽을 뛰어넘어 스타가 됐다. 인순이는 우리의 다(多)민족문화를 대표하는 여성이다.
윤석화 씨가 학력검증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도 우리 연극계에 안타까운 일이다. 윤 씨는 연극계에서 보배 같은 존재다. 그가 직접 대본을 구해 번역을 하고 타이틀 롤을 맡은 ‘신의 아그네스’는 총 532회 공연에 10만 관객을 넘겨 한국 연극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그의 가창력은 연기 이상으로 빼어나다. 1977년에 부른 ‘오란씨’ CM송은 국민가요처럼 애창됐다.
그는 광고 출연과 뮤지컬로 돈을 벌어 가난한 연극판을 위해 썼다. 서울 대학로에 있는 설치극장 ‘정미소(精美所)’를 운영하고,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공연예술 전문지 ‘월간 객석’을 인수해 지금도 연간 적자 2억 원가량을 사재로 충당한다.
연극계 보배 윤석화 복귀해야
그가 ‘이화여대 중퇴’ 학력이 허위라고 자백했을 때 누리꾼들은 2005년 신동아 5월호에 실린 필자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할퀴기 시작했다. 그는 신동아 인터뷰에서 미국 유학을 떠난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다른 배우들이 ‘윤석화 네가 연극에 대해 뭘 알아’ 하면 저는 속으로 ‘너희들 공부 못했으니까 드라마센터(서울예대 전신) 갔지. 나는 그래도 이대 출신이야’ 했지만 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죠.”
이 인터뷰 내용이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자 그는 기자들과 만나 “신동아 인터뷰를 한 분과 30년 동안 네 번 정도 만났는데 상당 부분 짜깁기됐다”고 변명했다. 나는 신동아에 ‘황호택이 만난 사람’이라는 타이틀로 6년간 명사 인터뷰를 연재했는데, 매번 녹음을 하고 속기사를 대동했다. 윤석화 씨는 인터뷰에서 이화여대 시절에 관해 네 차례 언급했다. 30년 동안 네 번 만났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지만 이것은 악의가 없는 기억력의 문제다.
나는 윤 씨의 허위학력 파문이 터졌을 때 검증을 소홀히 하고 그대로 받아쓴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런데 누리꾼들이 ‘너희들 공부 못했으니까 드라마센터 갔지. 나는 그래도 이대 출신이야’라는 말을 부지런히 퍼 나르는 것을 보면서 인터뷰의 기록성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다.
한 분야에서 큰 성취를 이룬 스타가 학벌이 무슨 문제였을까. 그런데 당사자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윤 씨는 지적 탐구욕이 강하고 다독(多讀)하는 배우다. 그런 성격이 학력 콤플렉스를 만들어 낸 것 같다.
이화여대 주철환 교수는 윤 씨를 ‘몇 안 되는 천재’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천재적인 연극배우가 정규 대학을 나오지 않았으면 어떤가. 윤 씨가 이화여대 중퇴 학력을 팔아서 누구처럼 대학교수도 되고 광주비엔날레 감독이 된 것도 아니다.
올해는 상처입고 좌절한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다시 돌아오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윤석화 씨의 복귀 무대가 기다려진다.
황호택 수석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