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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칼럼/은희경]한중일 소설 중 가장 재밌는 것은

입력 | 2008-01-05 02:55:00


누군가 내게 물었다. 그래도 인생이 살 만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별 망설임 없이 대답이 흘러나왔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 마시면서 여행 계획 짤 때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작가가 동의했다. 작가들은 대부분 여행에 관심이 많다. ‘체험’에 대한 직업적 욕구 때문일 것이다. 작가에게 공간적, 정서적 체험은 인생의 새로운 국면에 대한 취재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얻은 견문은 어떤 식으로든 작품에 반영된다.

여행에서 내가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낯선 곳의 사람들이다. 삶의 디테일을 보다 보면 그곳의 문화가 눈에 들어온다. 파리의 소극장에는 우리의 조조할인처럼 홈리스 할인이 있다. 거지도 예술작품을 감상할 안목과 기회를 존중 받는다. 언젠가 강원도를 여행하던 중에 세탁소 간판에서 재미있는 문구를 발견했다. 상의 3000원, 바지 2000원, 군복 2500원. 동독의 흔적이 남은 라이프치히의 신호등에는 모자를 쓴 사람이, 자전거가 많은 베이징과 쾰른의 신호등에는 자전거가 그려져 있다.

여행에 흥미를 더해 주는 것은 물론 ‘관심’이다. 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책이나 영화의 역할이 크다.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보고는 쿠바 여행을 꿈꿨고, 얼마 전부터는 ‘원스’ 덕분에 더블린에 강하게 끌리기 시작했다.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이후 파리에 대해, 카를로스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를 읽은 뒤엔 바르셀로나에 관심이 생겼다.

몇 년 전 일본으로 가족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신사와 유적지에서는 시들하던 아이들이 세계박람회 기념물과 체육관 앞에서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사진을 찍어댔다. 일본 만화 ‘20세기 소년’의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미스터 초밥왕’을 독파한 덕분에 각종 초밥에도 흥미를 보인 건 물론, 싫어하던 고추냉이(와사비)까지도 입에 넣는 것이었다. 자국 홍보에 있어 일본 문화의 전파력은 특히 엄청나다.

그럴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문화 창조자로서 나의 위상을 생각하게 된다. 내 작품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의 문화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가. 그 질문은 내가 살고 있는 한국이란 나라,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정체성 고민으로 이어진다. 여행에서 얻은 견문이 작품에 반영되는 것은 새로운 소재를 통해서가 아니다. 자기의 삶, 자기 존재에 대한 의식의 성숙을 통해서이다. 돌아오는 것이 여행의 진정한 종착이듯이,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이 진정으로 견문을 넓힌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일본에 비하면 한국 소설은 진지하고 무거워 재미가 없다고들 한다. 또 중국 소설에 비하면 서사가 약하고 힘이 없다고 한다. 그것은 그 사회와 관련이 있다. 일본 작가들이 자본의 시스템 안에서 편집자, 출판사와 공동 작업으로 기획물을 대량 생산한다고 한다면, 중국 작가들은 글 한 줄 안 써도 월급을 받는 공무형 소설가가 많다. 거기에 비해 한국 작가들은 경제적 불안 속에서, 늘 새로움을 요구하고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 데 분투하고 있다.

일본은 선진 개인주의 사회이므로 소설이 경쾌하고 감성적이며, 중화주의와 사회주의로 뭉친 중국은 인민을 설득하기 위한 무협지식 서사가 살아 있다. 반면 한국은 무거운 현대사를 짊어져 왔고 개인을 발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다. 작가들의 태도가 진지한 한편 이를 벗어나기 위한 문학적 시도가 다양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어떤 식으로든 한국의 작품들은 한국이라는 사회의 산물이라는 뜻이다. 지난 몇 년간 중국과 일본과 유럽 등 여러 차례의 작가 교류에 참가했는데, 그 견문을 통해 얻은 생각이다.

은희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