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화합형’… 실세 임명 땐 파워게임
《이명박 정부 출범이 임박하면서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이미 총리와 비서실장 인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당선인은 ‘경제 살리기’ 공약을 실천하고 좌파 정권 10년의 적폐를 바로잡는 데 있어서 중심을 잡고 보좌할 수 있는 사람을 총리와 비서실장에 기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초대 총리와 비서실장은 정권 초기의 국정 향배를 결정짓는 핵심 요직일 뿐 아니라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인사 내용은 물론 발탁 과정에 대한 뒷얘기도 두고두고 거론되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은 대개 초대 총리는 화합형을, 비서실장은 실무형 인사를 선택했다.》
○ 노무현 정부
개혁 불안감 해소위해 고건 발탁
실장엔 ‘코드 맞는 중진’ 문희상
○ 김대중 정부
‘경상도 舊여권’ 김중권 실장 파격
영향력 커지자 동교동계와 알력
○ 김영삼 정부
비선 신뢰… 총리-실장 힘 안실려
○ 노태우 정부
‘5共색깔 빼기’ 前서울대 총장 기용
▽노무현 정부=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코드 인사’를 고수했다. 하지만 초대 총리만은 코드보다 명분을 택했다. 개혁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이미 총리와 서울시장, 3번의 장관을 지낸 ‘고건 카드’를 선택했던 것.
당시 ‘386 실세’들은 ‘코드 불일치론’을 내세우며 강하게 반대했지만 노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하지만 고 전 총리는 1년 3개월간의 재임기간 내내 386 실세는 물론 여당의 주요 의원들로부터 견제를 받아야 했다.
초대 비서실장에는 문희상 의원이 발탁됐다. 노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인 2003년 1월 7일 문 의원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로 불러 비서실 개혁 방향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노 대통령은 문 의원의 생각도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이날 밤 초대 비서실장으로 낙점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실장이 정치적 뿌리나 성향은 다르지만 대가 세지 않다는 점에서 집권 초 개혁드라이브를 잡음 없이 뒷받침할 것으로 봤고 이광재 안희정 씨 등 오랜 측근들도 문 실장 기용에 찬동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대중 정부=김대중(DJ) 대통령은 초대 총리에 김종필(JP)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 비서실장에 김중권 전 의원을 임명했다. JP는 대선 전 ‘야권후보 단일화’ 협상 때부터 총리를 맡기로 예정돼 있었기 때문에 인선 과정에서 공동정권 내부에 이견이 없었다. 다만 한나라당의 반대로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통과되지 않아 5개월 이상 서리로 지내야 했다.
김 실장은 ‘호남 출신 대통령에 영남 출신 비서실장’ 체제가 필요하다는 동서화합 논리에서 DJ가 직접 발탁했다. 또 노태우 정부 말기 대통령 정무수석비서관으로서 DJ에게 ‘20억 원+α’를 전달하고 비밀을 지키는 등 DJ의 신뢰를 얻은 점도 고려됐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김 씨를 비서실장으로 내정하자 동교동계 의원들은 경악하며 반발했다. 수십 년간 DJ만 바라보고 살았던 가신(家臣)들로서는 구(舊)여권 출신이 정부의 인사와 정보를 장악하는 비서실장이 된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김 실장은 정권 초기에는 국정운영 경험이 부족한 동교동계 인사들을 제압하며 영향력을 극대화했지만 ‘DJ의 분신’을 자처한 박지원 당시 공보수석비서관과의 알력은 피할 수 없었다.
▽김영삼 정부=국정 운영과 관련한 김영삼(YS) 대통령의 특징은 △외곽의 비선조직 운용 △담당 비서관과의 독대를 통한 보안 제일주의 △야당 총재 시절부터 몸에 밴 보스 기질 등으로 요약된다.
YS의 인사 스타일도 마찬가지다. 그는 “언론에 내정 사실이 알려지면 인사를 취소하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철저한 보안을 강조했다. 또 총리와 비서실장에게 힘을 실어주기보다는 차남 현철 씨나 이원종 정무수석비서관을 더 신뢰했다.
이 때문에 황인성 전 농림수산부 장관을 초대 총리로, 박관용 의원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했지만 이들이 정부와 청와대를 장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황 총리는 미리 정해 놓은 국가안전기획부장과 부총리 등이 영남 출신이기 때문에 지역 안배 차원에서 기용된 측면도 있었다.
▽노태우 정부=군인 출신인 노태우 대통령은 조직을 통한 행정에 익숙했다. 또 자신의 의견을 밀어붙이기보다는 참모의 제안에 의존하는 편이었다. 이 때문에 학력과 경력이 우수한 사람을 좋아했다.
이현재 전 서울대 총장을 초대 총리로, 홍성철 전 보건사회부 장관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한 것도 이 같은 성격에 기인했다는 게 당시 관계자들의 평가다.
노태우 대통령은 직선(直選)으로 당선된 뒤 5공화국 잔재를 청산하고 국민 화해무드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다. 이때 참모들이 천거한 인물이 서울대 총장 재직 시절 미국문화원 농성 사건에 연루된 학생을 옹호하다 경질된 이 전 총장이었다.
‘이북 5도민회’ 회장을 지내기도 한 홍 실장은 대선 기간 중 이북 5도민 표를 결집하는 데 기여했고 대인관계가 원만하다는 점이 감안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당시 권력 실세였던 박철언 씨 등이 총리와 비서실장을 견제하기 위해 대통령과 친분관계가 없는 인사를 추천했다는 얘기도 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 ‘초대 비서실장’ 지낸 문희상의원 盧사진 빼고 의정보고서 만들어▼
4일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대통합민주신당 문희상 의원이 4·9총선을 대비해 만든 의정보고서가 화제에 올랐다.
노무현 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고 옛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낸 문 의원의 10쪽 짜리 의정보고서에 노 대통령의 사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의정보고서에는 그 대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진은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물결 모양 로고도 찾아보기 힘들지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배경으로 나오는 사진은 있다.
대표적인 친노(親盧) 중진으로 꼽히는 문 의원마저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고 평가받는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색깔을 최대한 빼려고 하는 것 같다는 해석이 나왔다. 대통합민주신당의 한 당직자는 “다른 의원들 의정보고서도 거의 마찬가지다. 염량세태를 절감한다”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