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록그룹 ‘플라스틱 피플(The Plastic People of the Universe)’이 경찰에 체포됐다. 죄목은 ‘평화 파괴죄’.
이 그룹은 1968년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해 ‘프라하의 봄’을 빼앗은 데 반발하는 의미로 결성된 밴드였다. 자칭 ‘국가의 적’이었던 밴드의 멤버들은 반체제적인 노래 가사와 퍼포먼스로 비공개 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플라스틱 피플을 선두로 록그룹들이 줄줄이 탄압을 받자 지식인들이 들고 일어섰다. 공산주의 정권의 횡포를 더는 참을 수 없다는 공감대가 확산됐다.
1977년 1월 7일 지식인 241명은 인권 존중과 헬싱키 선언의 준수 등을 요구하는 ‘77헌장’을 발표했다. 일상생활은 물론 사상과 정보를 통제하고 언론을 탄압하는 인권침해에 항거하는 내용이었다. 체코의 전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과 체코의 지성 지리 하예크 등이 헌장에 서명했다.
이 같은 저항운동의 점화는 1968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체코슬로바키아는 냉전체제 속에서 소련의 팽창주의에 복속됐던 다른 동유럽 나라들과는 달랐다. 유럽 내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선진화된 체제를 자랑했던 체고슬로바키아는 전체주의 국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자유를 갈구했다.
민중의 염원대로 1968년 1월 온건주의자 둡체크가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해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를 표방했다. 자본주의적 요소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였고 표현의 자유도 허락했다. 프라하에는 따뜻한 민주화의 훈풍이 불었다.
따뜻한 봄날은 길지 않았다. ‘프라하의 봄’은 불과 8개월 만에 소련의 군홧발에 짓밟혔다. 친소 정권이 들어서고 모든 자유가 억압됐다.
하지만 봄날을 만끽해 본 국민은 자유를 포기할 수 없었다. 수년 동안 산발적 민주화운동이 끊이지 않았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국제적으로 인권운동 바람이 불었다. 마침내 1975년 유럽안보협력회의에서 지역안보와 자유 수호를 골자로 한 헬싱키 최종의정서가 조인돼 유럽 내 긴장이 완화됐다. 1976년 국제인권규약이 발효돼 국제적 인권 규범이 자리 잡았다.
당시 정부는 ‘77헌장’의 등장을 계기로 반체제 운동을 뿌리째 뽑으려 했지만 오히려 체코슬로바키아에 새로운 봄을 부르는 계기가 됐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