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이 세계의 문을 열자, 물자만이 아니라 사상과 지식도 새로 흐르기 시작했다. 몽골인은 독일의 광부들을 중국으로 데려오고, 중국 의사들을 페르시아에 데려갔다. 이런 이동에는 기념비적인 것도 있었고 사소한 것도 있었다.…중국에선 기독교 교회 건립, 페르시아에서 절과 탑 건립, 러시아에서 무슬림 쿠란 학교 건립을 위한 자금을 댔다. 몽골인은 정복자로서 지구를 휩쓸었지만, 문화의 전달자 역할에서도 달리 경쟁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한승주 고려대 총장 서리 추천》
골리앗 유럽 제패한 절제의 리더십
칭기즈칸의 역사적 평가는 극과 극이다.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는 칭기즈칸을 자신의 희곡 ‘중국의 고아’에서 “오만하게, 왕들의 목을 짓밟은, 파괴적인 압제자”라고 불렀다. 인도 정치가 네루는 “알렉산더와 카이사르도 그 앞에서는 작아 보이는 아시아의 영웅”이라 치켜세웠다. 그런 칭기즈칸에 대해 한승주 고려대 총장 서리는 ‘리더십’이란 잣대를 들이댔다.
“칭기즈칸 하면 보통 잔혹한 이미지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작은 부족으로 시작해 세계를 제패하며 엄청난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 과정에서 제도와 법을 새로 만들고, 넓은 지역에서 통신망을 구축했다. 구성원들의 충성심을 유발하고 그 안에서 우수한 인재를 발탁하고 훈련시킨 점도 놀랍다. ‘칭기즈칸, 잠든…’은 그런 점을 꿰뚫어 봤다.”
미국 매칼레스터대 인류학과 교수인 저자는 부족민 연구 전문가다. 저자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비단길과 교역의 역사에서 부족민이 차지하는 역할을 연구하던 도중 칭기즈칸과 몽골 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 8년 동안 몽골은 물론 중국과 중앙아시아, 터키까지 구석구석을 돌며 이 책을 썼다.
한 총장 서리의 말처럼 이 책은 몽골 제국이 말 타고 칼 휘두르는 일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세계를 제패하는 과정에서 몽골이 동서양 문명 교류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살핀다. 저자는 13세기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를 하나로 통합했고, 이를 통해 ‘근대의 세계 체제’로 가는 길을 열었다고 주장한다. 15, 16세기 봉건제의 몰락과 자본주의 성장을 통해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체제가 형성됐다는 기존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무엇보다 칭기즈칸은 리더십의 중요성을 깨달은 이였다. 지도력의 첫 덕목으로 ‘자기 절제’를 꼽았다. 자만심과 분노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지도자는 말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보여 줘야 한다. 나라를 정복하는 것은 그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것과 같다.”
칭기즈칸의 뒤를 이어 ‘팍스 몽골리카’를 구축한 쿠빌라이 칸도 통치의 핵심을 꿰뚫고 있었다. 쿠빌라이 칸은 군대와 홍보도 중요하지만 좋은 행정과 정책이 우선한다고 믿었다. 몽골 제국이 추구한 자유교역과 자유로운 교통, 지식 공유, 종교적 관용 정책 등의 실효성은 지금도 그대로 통용된다.
몽골은 로마군이 400년간 정복한 것보다 훨씬 많은 땅을 차지했다. 불과 25년 남짓한 기간이다. 현대 지도로 치면 서른 나라가 넘는다. 놀라운 것은 당시 몽골 부족 전체 인구가 100만 명 정도였으며 군대는 겨우 10만여 명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힘으로 새로운 세계 질서를 창조했다. 현실적 어려움은 범인(凡人)들이나 하는 소리였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