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김대업은 비리척결 신념 가진 의인”
2008년 “나와는 관계없는 일… 할 말이 없다”
2002년 16대 대선 직전 김대업 씨를 ‘의인’이라고 부르며 김 씨를 감싸던 당시 새천년민주당 의원 등 관계자들은 김 씨가 폭로 기자회견을 예고하자 대부분 “나와 관계없는 일” 또는 “할 말이 없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2002년 8월 26일 국회 국방위에서 “김대업 씨는 병역비리만은 발본색원해야겠다는 신념을 가진 의인”이라고 극찬한 박양수 전 의원은 “김 씨와는 일면식도 없다. 관련 자료를 보고 ‘이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구나. 참 의로운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얘기했을 뿐이다”고 말했다.
2002년 8월 13일 법사위에서 “(김대업 씨) 기록을 보니까 단 며칠 만에 (병무 비리 적발과 관련해) 상당한 개가를 올렸다. 그런 사람의 말을 안 믿고 누구를 믿겠는가”라며 김 씨에 대한 강한 신뢰를 표시했던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김 씨의 주장과 관련해 “관련 없는 일이라 특별히 할 말이 없다”고 했다고 수행비서가 전했다.
2002년 7월 24일 대정부질문을 통해 이 사건을 국회 차원에서 처음으로 공론화한 신기남 의원과 당시 민주당 병역비리은폐진상조사특위 위원장으로 ‘저격수’ 역할을 맡아 김 씨를 감싸고 병풍 의혹 부풀리기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천용택 전 의원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신 의원은 검찰이 병풍 의혹에 대해 ‘사실 무근’으로 결론을 내리자 2002년 10월 25일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는 의혹의 뚜껑을 덮고 이회창 후보에게 면죄부를 준 것으로 대선가도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일대 반전을 꾀하는 검찰의 음모라고 생각한다”며 검찰의 수사 결과보다 김 씨의 주장을 신뢰하는 듯한 반응을 보인 바 있다.
천 전 의원은 특히 김 씨가 2002년 7월 31일 서울중앙지검에서 기자회견을 열기 한 달여 전인 6월 27일 김 씨의 기자회견 계획은 물론이고 “김 씨를 병역비리특위 위원장의 병역비리조사 특보로 임명해 위촉장을 수여할 방침”이라고 당 지도부에 보고한 것으로 드러나 김 씨의 배후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 씨를 특보로 임명하겠다는 천 전 의원의 계획은 당 지도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2002년 8월 21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쪽(검찰)이 국회 대정부질문 등을 통해 병역 의혹을 제기해 달라고 했다”는 취지의 ‘병풍 유도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그러나 이 전 총리 측은 이날 “김 씨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김 씨가 5일 글에서 “대통령을 도구라 부르는 측근들이 결국 대통령을 도구로 전락시켰다”며 노무현 대통령의 386 측근들을 비판한 것에 대해 이광재 의원은 “김 씨를 만난 적도 없고 할 말도 없다”고 했다.
한편 청와대는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짐작할 것”이라고 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한나라 “盧대통령이 해명해야”▼
한나라당은 2002년 병풍(兵風)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대업 씨가 병풍의 내막과 노무현 대통령 측근들의 전횡을 폭로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7일 “검찰은 재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고 노 대통령은 직접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현안브리핑에서 “동기야 어쨌든 정권 찬탈을 위한 공작정치의 도구로 이용당했던 김 씨가 역사상 가장 추악했던 공작정치의 실체를 늦게나마 직접 고백하겠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라고 밝혔다.
나 대변인은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아니 국민을 기만해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이런 공작정치까지 자행했다는 것을 다시 상기하니 분노를 넘어 허탈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해 말 노 대통령과 청와대가 김 씨의 사면 복권을 검토했다가 포기했던 일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 이번 폭로로 확인됐다”면서 “당사자들과 노 대통령이 이제는 직접 해명하고 사죄하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 대변인은 “검찰도 수사를 다시 해야 한다. 김 씨의 폭로와 관계없이 김 씨 등을 다시 조사해 그가 밝힌 노 대통령 측근들의 관련 여부와 진상을 국민 앞에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2002년 대선 때 후보 법률특보를 지낸 김정훈 의원은 “노 대통령과 386 측근들이 뒤에서 어떤 공작을 벌였는지 드디어 만천하에 공개될 것을 생각하니 만시지탄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작세력들은 지금이라도 진실을 밝히고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昌측 “진실 밝히겠다니 환영할 일”▼
병풍의 피해 당사자였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측은 다소 조심스러운 표정이다.
이 전 총재 측 관계자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2002년 대선에서 결정적 영향을 끼쳤던 사건의 당사자가 이제라도 진실을 밝히겠다고 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고 밝혔다.
이 전 총재 측은 그러면서도 ‘김대업과 병풍’ 문제가 불거질 경우 4월 총선을 겨냥한 창당 작업에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국민정당을 지향하는 정치세력을 규합해 총선에서 승부를 보려는 이 전 총재 측은 과거의 불미스러웠던 일이 다시 공론화되는 것 자체가 유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박경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