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전신화상 중태에 “배속 아기 어떻게 키우라고…”
함께 일하던 조선족 부부, 아내만 빠져나와 오열
■ 희생-부상자 가족 안타까운 사연
온몸에 붕대를 감고 목에 관을 삽입한 채 고통스럽게 숨을 몰아쉬는 천우환(34) 씨를 지켜보는 아내 전현숙(30) 씨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3일 결혼한 신혼부부이다.
7일 경기 이천시 냉동창고에서 발생한 화마(火魔)는 결혼 4개월째인 천 씨 부부의 단꿈도 집어 삼켰다.
이날 오후 12시 40분경 냉동기술자인 천 씨는 얼굴과 등, 다리를 포함해 전신에 50% 이상 2, 3도 화상을 입고 의식을 잃은 채 서울 구로구 고척1동 구로성심병원에 실려 왔다.
사고 직후 연락을 받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온 천 씨의 아버지 천종길(61) 씨는 “참 성실하고 착한 애인데”라며 “며느리에게는 충격을 받을까 봐 알리지도 못했다”고 울먹였다.
천 씨는 유치원 교사인 전 씨와 경기 성남시 단대동에 신접살림을 차리고 “출퇴근이 편한 회사로 옮긴다”며 코리아2000으로 이직한 뒤 한 달 반 만에 사고를 당했다.
뒤늦게 남편의 동료에게서 사고 소식을 전해들은 전 씨는 충혈된 눈으로 오후 5시 40분경 병원으로 달려왔다. 전 씨는 현재 임신 3개월이다.
중환자실 침상에 누워 있는 남편은 호흡기에 화상을 입어 전 씨를 보고도 아무런 얘기를 하지 못했다.
이 병원 노남규 외과과장은 “천 씨는 호흡기 손상이 심각해 폐렴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고 생명이 위독할 수 있다”며 “2, 3일 내 수술을 한 뒤 지켜봐야 생사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비슷한 시간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서울 강남구 대치동 베스티안병원으로 옮겨진 중국 동포 임춘원(44·여) 씨는 창고에서 함께 작업을 하던 남편 이승복(44) 씨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위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중국 지린(吉林) 성에 아들(23)을 홀로 남겨 두고 몇 년 전 한국에 온 이 부부는 공장의 단열재 마감 작업을 하며 생계를 꾸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임 씨의 세 조카는 온몸에 붕대를 감고 의식을 잃은 이모를 보자 눈물을 쏟아냈다. 조카 정모 씨는 “서로 생활에 쫓겨 연락도 자주 하지 못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창고에서 온힘을 다해 뛰어나온 덕분에 목숨을 건진 박종영(35) 씨는 올봄에 결혼하기로 한 약혼녀 안모(33) 씨를 만나자마자 한없이 눈물만 흘렸다.
안 씨는 “얼굴을 붕대로 감고 있으면서도 ‘괜찮다, 괜찮다’고 말하더라”며 “내가 걱정할까봐 사고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주위에 부탁했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더 아팠다”고 말했다.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않은 채 화재 현장을 지켰던 실종자 가족들도 40구의 시신이 모두 발견되자 슬픔과 절망에 휩싸였다.
숨진 냉장설비업체 직원 이용호(42) 씨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4남매 중 맏이로 홀어머니를 모셔 온 듬직한 가장이었다.
이 씨의 작은아버지 이차희(67) 씨는 “지난해 중학생이 된 딸의 학원비를 벌기 위해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고 했다”며 “이틀 전에도 전화를 걸어 ‘공사가 마무리 단계라 서울 댁으로 곧 찾아뵙겠다’고 말했는데 이게 마지막이 될 줄이야…”라며 오열했다.
코리아2000의 협력업체로 직원 상당수가 희생된 유성엔지니어링 임진해 대표의 아들 남수(30) 씨도 검게 탄 시신으로 발견됐다.
임 씨의 어머니는 “10개월 전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아버지 일을 돕겠다고 나선 착한 아들이었다”면서 “지난달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좋아했는데 장가도 못 가보고 이게 웬 날벼락이냐”며 울부짖었다.
한편 사망자들이 이송된 경기 이천시 이천의료원과 효자원 등에서는 신원 확인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직원들이 시신의 유전자를 채취했다. 병원은 한동안 들것에 실려 온 시신만이 안치실 바닥에 깔린 비닐 위에 나란히 놓여 있다가 유가족들이 속속 들어서며 울음바다로 변했다.
화재가 난 창고 건물은 준공허가 직후인 지난해 11월 27일 건물 전체가 LIG손해보험의 153억 원짜리 기업종합보험에 가입된 상태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이천=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영상취재 : 신세기 기자
▲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 사고 난 ㈜코리아2000은
창고 건설-임대 전문회사
냉동물류창고 건설 전문업체인 코리아2000은 지난해 6월 이천시로부터 건축허가를 받았다. 준공허가는 11월 5일 나왔다. 지상 1, 2층은 택배회사에 각각 물류센터와 사무실로 임대했다. 지하층은 코리아2000이 냉장냉동 창고로 사용하기 위해 육가공식품용 창고 6개를 설치하고 마감공사를 하던 중이었다. 코리아2000은 1999년 11월 자본금 50억 원으로 설립됐다. 본사는 불이 난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에 있고 서울사무소가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다. 이 회사는 토지형질 변경과 관련한 컨설팅과 물류창고 건설 및 임대가 주 업종이다. 코리아냉장, 한국창고, 건축사사무소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이천=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