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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51년 미국 뉴욕 유엔본부 개소

입력 | 2008-01-09 03:01:00


20세기 초는 암흑의 시기였다. 유럽에서 시작된 1, 2차 세계대전의 포연은 아시아 아프리카로 퍼져 나갔다. 인류애는 총칼 앞에서 무력하기만 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의 공포는 인류를 벼랑 끝까지 내몰았다.

‘전쟁이 더 큰 전쟁을 낳는 재앙의 씨앗’이라는 뒤늦은 깨달음은 죽음과 공포의 그림자 속에서 싹텄다. 인류의 양심과 자기보호 본능이 눈을 뜬 것. 1945년 10월 24일 전쟁 방지와 세계 평화를 내 건 유엔이 공식 출범했다.

유엔본부가 당시 뉴욕 맨해튼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뉴욕의 대학 캠퍼스와 근교 도시를 전전하던 유엔본부는 1951년 1월 9일 맨해튼에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다. 미국 프랑스 소련 중국 캐나다 브라질 등 다국적 건축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돔과 고층 빌딩이 어우러진 현대식 건물을 완공했다.

이에 앞서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필라델피아 등 미국의 대도시는 물론 중소도시까지 유엔본부 유치에 나서면서 ‘유엔본부 유치전’이 벌어졌다. 캐나다는 나이아가라 폭포 주변의 섬을 ‘세계 평화의 수도’로 내세우며 유치전에 뛰어들기도 했다.

뉴욕 유엔본부는 전후 ‘세계 평화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한지붕 아래 세계 200개 국가에서 온 4500명의 유엔 직원과 192개 회원국 대표단이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아랍어 등 6개 국어로 일하는 ‘작은 지구’다. 대중문화와 예술 작품 속에 유엔본부는 ‘평화’를 상징하는 단골 소품으로 등장했다. 영화 007 시리즈부터 외계인의 침공으로 공포에 떠는 인류를 묘사하는 만화 영화까지.

유엔본부는 유엔 회원국 모두의 땅으로 간주된다. 이곳에서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으면 미국이 아닌 유엔본부 소인이 찍혀 배달된다. 미국의 사법권이 미치긴 하지만 유엔 공무원에게는 면책 특권이 부여된다.

한국인에게도 각별한 곳이다. 1980년대 한국 민주화를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교민 시위가 이 앞에서 단골로 열렸다. 지난해에는 ‘유엔 원조국’ 출신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취임했다. 연말 대선에서는 ‘유엔본부 판문점 이전’ 공약을 내건 후보까지 나왔다.

장소가 어디면 어떨까.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드는 평화와 인류애라도 가져올 수만 있다면. 2007년 유엔본부는 56년 만에 리노베이션을 하기로 결정했다. 약 7년 뒤 에너지 효율과 환경을 고려하는 친환경 건물로 다시 태어난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