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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대통령에게 권하는 책 30선]책문-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입력 | 2008-01-11 03:00:00


《“지금 세상에서 공(公)을 따르고 사(私)를 버리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관리를 뽑고 벼슬을 얻기 때문에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좋은 표정만 짓는 사람이 자리에 오르고, 아첨하고 비굴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 관직에 나아갑니다.”

-소설가 김주영 씨 추천》

“지금 가장 시급한 나라의 일은 무엇인가, 나라를 망치지 않으려면 왕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왕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신하가 답한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책이다.”

소설가 김주영 씨의 추천 이유가 이 책의 핵심 주제를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책문(策問)이란 무엇인가. 조선시대에 임금이 과거 응시자 중 최종 합격자 33명에게 당대 국가 과제에 대한 방책을 직접 물었다. 이를 책문이라 불렀다. 책문은 인재 등용을 위한 통과의례만은 아니었다. 왕은 당대의 고질병을 솔직히 드러내 대책을 허심탄회하게 물었다.

“지금 당장 시급하게 힘써야 할 국가정책은 과연 무엇인가? 과연 그대가 왕이나 재상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 책은 세종 중종 명종 광해군 등이 물은 책문 13건과 명신(名臣)들의 대책 15건을 한글로 풀고 해설을 달았다. 신하들의 답은 도와 덕을 실현하려는 유교 사상에서 나왔지만 오늘날 최고 지도자가 마음에 새겨들을 문제의식이 가득하다.

세종대왕이 물었다.

“법의 폐단을 고치는 방법은 무엇인가.”

성삼문은 법을 고치기 전에 임금의 마음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광무제를 예로 든다. 광무제는 전한(前漢) 말기 군주는 약한데 신하는 강한 형국이라며 삼공(三公·옛 중국 최고의 관직)의 권한을 빼앗았다. 그러나 권력이 환관에게 돌아가 조정이 혼란해지고 만다. 성삼문은 반드시 법을 뜯어 고쳐야 이상(理想) 정치를 이루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또 사람을 쓰는 것은 국가의 큰 권한이니 재상에게 맡기되 자질과 이력을 따지는 자질구레한 일은 재상을 번거롭게 하니 전조(銓曹·인사 일을 맡아 보던 관아)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재상에게 맡기면 재상이 노고를 이기지 못하게 되고, 두 가지 일을 오로지 전조에 맡기면 전조에 권한이 지나치게 편중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숙주는 언로(言路)를 열어 직언을 받아들인 후 날마다 대신들과 폐단을 고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석형은 지나친 개혁은 패망의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일을 맡기지 않고 대신들의 자리만 채워 백성에게 근심과 걱정을 끼치지 말라고도 했다.

신숙주의 말처럼 책문 자체가 직언의 장(場)이었다. 광해군이 “당장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인재등용 세제개혁 토지정비 등을 위해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유생 임숙영은 되묻는다.

“임금이 싫어하는 것을 말하지 않으려는 풍조를 좇아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을 숨길 순 없습니다. 어찌 속된 선비처럼 왜곡된 말만 따라하며 인재선발을 맡은 관리의 기준에만 부합하려고 힘써, 전하의 은총을 훔쳐 임명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임금의 잘못이 국가의 병입니다. 왜 자신의 실책을 말씀하려 하지 않으십니까.”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