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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엄마 가위손 미워!…‘머리 안 자를 거야’

입력 | 2008-01-12 02:56:00


◇ 머리 안 자를 거야/엘리비아 사바디어 글, 그림·최윤정 옮김/32쪽·9000원·바람의아이들(3∼6세용)

언젠가 그날이 온다. “엄마, 나 이거 입을 거야!”라고 하는 날이. “엄마, 나 머리 안 자를 거야!”라고 하는 날이.

항상 공주처럼, 왕자처럼 예쁘고 멋지게 단장해 주고 싶은데, 얼마쯤 자라서부턴 아이들은 확실하게 취향이 생겨 버린다. 그것도 엄마 눈으로 보기엔 정말 확 갈아입혀 버리고 싶고, 당장 미용실에 데려가 버리고 싶은 취향.

도미니크네 엄마는 심지어 헤어 디자이너다. 그런데 그 아들인 도미니크는 가위만 보면 난리다. 누가 머리를 살짝만 잡으려고 해도 마구 소리를 질러댄다. 난리 치는 아들을 붙잡고 가위를 댔다가 3분의 1도 자르지 못하고 가위를 놓은 일도 수차례. 도미니크의 들쭉날쭉하고 제멋대로인 머리를 매일 보려니 얼마나 속이 뒤집어질까.

가만, 어린이 전문 미용실에선 머리 자르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잘 달래 준다던데. 그런데 도미니크한테는 도대체 통하질 않는다. 근사한 빨간색 자동차 의자, 프로펠러가 달린 파란색 비행기 의자에 앉았다가도 가위만 보이면 도미니크는 질겁하고 도망친다.

결국, 엄마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한여름에 곰 얼굴 털모자를 꺼내선 그 모자 안 쓰면 유치원 안 가겠다는 아이, 예쁜 진분홍 원피스엔 진분홍 꽃무늬 스타킹이 딱인데 하늘색 스타킹을 꺼내 와선 이거 안 신으면 할머니댁 안 가겠다는 아이…. 기운이 쭉 빠진 엄마, 아이와 씨름할 기운도 없다.

그런 엄마에게 도미니크가 묻는다. “엄마, 나 때문에 화났어?” 이렇게 묻는 아이에게 “그래, 화났어!”라고 할 엄마가 어디 있을까. 조금 미안한 듯, 정말 궁금한 듯 물어보는 아이를 엄마는 미워할 수가 없다. 모든 엄마에게 아이는 어떤 모습이든,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최고로 예쁜 존재임을, 책을 읽어 주는 엄마가 먼저 깨달을 듯싶다.

하기야, 아이는 꾸며 주는 모습일 때만이 아니라 매 순간 사랑스럽지 않던가. 또 생각해 보니, 제멋대로인 머리 모양을 좋아하는 것도, 곰 얼굴 털모자와 빨간 원피스에 파란 스타킹을 좋아하는 것도, 아이들만 가질 수 있는 소중한 취향이 아니던가.

이 그림책은 사랑스럽다. 만화풍의 그림이 유쾌하고, 페이지마다 짧은 구어체 문장 하나하나가 생동감 있다. 그렇다고 ‘착하고 교훈적인’ 그림책이라고 여기진 말 것. 마지막 장 바로 앞장에서 “오늘은 머리 안 자를 거야”라고 엄마와 도미니크는 손가락 걸어 약속하면서 서로 눈을 반짝인다. 멋진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