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에 누웠는데 다리가 찌릿찌릿해서 발목을 자꾸 까닥거리게 되고 잠도 잘 못 잔다면 이런 증세도 병이라고 봐야 할까. 의학계는 이를 ‘하지불안증후군(Restless Leg Syndrome)’이라고 부른다.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런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하지불안증후군은 10여 년 전부터 신경의학계의 주요 연구 대상이었다. 최근 하지불안증후군이 심장병 위험을 두 배로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
다리가 찌릿찌릿~ 발목 까닥까닥~ 하지불안증후군
○ 움직여야 불쾌한 느낌 사라져
하지불안증후군은 평소 다리를 떠는 습관과는 다르다. 다리 떠는 것은 대낮에 자신도 모르게 하는 습관이지만 하지불안증후군은 낮에는 괜찮다가 저녁에 자리에 누웠을 때 자주 생긴다. 가만히 앉아 있을 때 다리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움직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게 되기도 한다.
하지불안증후군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대개 “다리에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찌릿찌릿한 느낌, 솜털로 다리를 문지르는 느낌이 있다”고 말한다.
이런 느낌은 다리를 움직이면 사라진다. 그래서 자꾸 다리를 움직이고 싶어진다. 다리가 가려우면 긁어야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하지불안증후군 동작은 대개 비슷하다. 엄지발가락만 위로 올라가고 나머지 발가락은 부채처럼 펴진다. 잠시 후 발목이 위로 젖혀지면서 한 번 ‘까닥’하게 된다. 심하면 무릎도 움직인다. 한 번 ‘까닥’하는 동작은 짧으면 0.5초, 길면 5초 동안 나타난다.
이 동작이 90초 정도 간격으로 연속 4번 나타나면 하지불안증후군으로 진단된다. 증세가 심한 사람은 하룻밤에 200∼300회 다리를 움직인다.
○ 심장병 유발 위험 높아
미국 하버드대 의대 연구팀은 하지불안증후군과 심장혈관질환의 관계를 조사한 결과 하지불안증후군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심장혈관질환 위험이 2.07배, 관상동맥질환 위험이 2.0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불안증후군이 불면과 수면 질 저하의 직접적 요인이 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심장에도 부담을 준다는 연구결과는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팀은 “한 번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혈압이 올라가고 심박동도 증가한다”면서 “움직이는 동작이 되풀이될 때마다 심장은 부담을 느끼게 되고 장기적으로 심장혈관질환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하지불안증후군은 수면도 방해한다. 다리를 움직이고 싶어 잠을 잘 수 없고, 잠이 들어도 다리를 계속 움직이다 보니 자꾸 깨고 깊은 잠을 잘 수 없다. 밤에 잠을 잘 못 자니 낮 시간에 사회활동에 집중하기 힘들다. 하지불안증후군으로 인한 삶의 질 저하 수준이 심근경색증과 같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 철분 부족이 원인
하지불안증후군은 오진이 많다. 아직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원철 경희동서신의학병원 신경과 교수는 “환자 중에는 통증클리닉에서 치료를 받거나 디스크 치료를 받은 사람이 흔하다”며 “심하게는 허리 수술을 5번까지 받은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는 유전적 요인과 중추신경계 내 철분 부족이 주요 원인으로 추정된다. 철분 부족이 도파민(뇌세포 간 흥분전달물질) 부족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월경을 하거나 임신한 여성, 도파민 생성을 억제하는 정신분열증 치료제를 복용하는 환자에게 하지불안증후군이 잘 나타난다. 이 밖에 카페인, 술, 흡연도 주요 원인으로 알려졌다.
원인을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치료도 원인을 제거하기보다는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 주력한다.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는 약물을 복용하지 않거나 철분을 보충해 주는 식이다.
생활습관으로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 손영호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는 “다리 마사지와 족욕을 자주 해 주고 비타민C, E를 많이 섭취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잠자기 전에 운동을 심하게 하거나 술을 마시면 증세가 악화되기 쉽다. 신경안정제는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으니 복용하기 전 의사와 상담하도록 한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