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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프로들’ 몸으로 때우는건 잘하는데…

입력 | 2008-01-14 20:35:00


미국인 컨설턴트 스티븐 더글러스(가명·34) 씨는 1년 전 서울 근무를 시작한 후 한국 직장인들의 성실성에 입이 벌어졌다. 컨설턴트라 야근을 자주 하는 더글러스 씨도 놀랄 정도로 많은 한국 직장인이 밤늦게까지 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인과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면서 이내 실망했다. 상당수 직장인은 다른 컨설팅회사가 만든 보고서에서 숫자 등 약간의 내용만 수정했을 뿐 창의적 아이디어를 거의 제시하지 못했다. 더글러스 씨는 "한국인의 성실성은 뛰어나지만 이를 응용하고 창조적으로 적용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며 "해외 인재들에 비해 한국인 프로페셔널들은 복합적 사고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동아일보가 15일 창간한 경영전문 매거진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LG경제연구원과 함께 한국 최초로 실시한 '한국 프로 역량 설문조사' 결과도 더글러스 씨의 평가와 다르지 않았다. 설문조사 결과는 '우리나라 인재는 끈기와 투지는 있지만, 개인기와 창의성은 부족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는 한국 축구대표팀에 대한 평가와 유사하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선진국과의 격차를 줄이고 개도국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서는 한국형 프로페셔널, 즉 창의력과 혁신 역량 등 소프트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감각 'F학점' 수준

한국 프로페셔널들이 가장 혹독한 평가를 받은 것은 '글로벌 감각'(51점)이었다. 글로벌 감각은 단순한 어학 능력만이 아니라 다문화에 대한 적응력과 포용력, 글로벌 마인드 등이 포함된다.

조병렬 GE코리아 이사는 "많은 한국인이 미국과 유럽에 대해서는 상대적인 열등의식을, 동남아 및 중동에 대해서는 비현실적 우월의식을 드러내 인간관계와 조직관리에서 문제를 일으킨다"고 비판했다.

또 한국 프로페셔널들은 전문성과 지식수준(95점)은 글로벌 인재에 근접한 점수를 받았지만 창의성과 혁신성(61점), 논리적 사고(80점) 등에선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창의성과 혁신성이 떨어지는 것은 한국 특유의 수직적 조직문화 탓으로 풀이된다. 한 일본인 엔지니어(38)는"요즘 한국 회사는 30~50년 전 일본 기업과 비슷하다. 사장의 결정은 곧 '신'의 명령이기 때문에 직원들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떨어진다"고 꼬집었다.

성균관대 글로벌MBA 과정에 재학 중인 미국인 앤 잭슨 씨는 "한국인들은 실제 업무 성과보다 근무 시간에 집착한다"며 "이는 수직적 상하관계에서 노동시간으로 자신의 충성심을 과시하려는 것이며, 한국 회사의 생산성이 글로벌 기업보다 떨어지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직장문화에 반감… 자기계발 노력은 부족

일반 직장인 응답자의 절반 이상(50.7%)은 '한국 기업에서는 프로페셔널 인재들이 제대로 인정받고 살아남기 어렵다'고 답했다. 프로가 잘 살아남을 수 있는 문화라고 답한 응답자는 21%에 그쳤다.

한국의 직장문화에 대한 의견을 묻는 주관식 설문에서도 "학연, 지연 등에 묻혀 진정한 프로페셔널이 성장하기 어렵다"거나 "실적주의는 요원하며 학교나 학원도 프로보다는 평균인을 양성하고 있다"는 쓴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프로페셔널을 안 키우는 조직'에 대한 불만은 많지만 자기계발을 위한 노력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평균 자기계발 시간'을 묻는 질문에 '2시간 이상'이라는 응답은 14. 2%에 불과했으며, '1시간 미만'이라는 응답이 43.4%로 가장 높았다.

전문가들은 한국 직장인들이 해외 프로페셔널과 기업문화를 벤치마킹해 글로벌 인재와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단점을 보완하는 동시에 강점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조은성 한림대 경영학과 교수는 "21세기 무한경쟁의 시대에는 남과 달라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근면성 등 한국인만의 장점을 무조건 포기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조사는 한국형 프로페셔널(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성과를 창출하는 인재)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해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됐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김남국 기자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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