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천)과 萬(만)은 아주 많음을 나타내며 흔히 짝을 이룬다. 千秋萬歲(천추만세)는 아주 오랜 세월을, 千紫萬紅(천자만홍)은 울긋불긋 여러 가지 빛깔이 어우러진 것을 가리킨다. 千差萬別(천차만별)은 많은 수가 각기 차이가 있어 구별됨을 뜻하며, 千客萬來(천객만래)는 많은 손님이 옴을 의미한다. 鳥(조)는 새, 飛(비)는 날다, 絶(절)은 끊어지다의 뜻이다. 鳥飛絶(조비절)은 새가 나는 것이 사라졌음을 가리킨다.
徑(경)은 작은 길이나 지름길을 뜻한다. 踪(종)은 종(종)과 같은 글자로서 자취의 뜻이다. 발자국이나 흔적 또는 事蹟(사적)을 의미한다. 滅(멸)은 끊어지다 또는 사라지다의 뜻으로, 앞 구절의 絶(절)과 짝을 이룬다. 끊다 또는 없애다의 뜻도 된다. 滅絶(멸절)이나 滅亡(멸망) 또는 滅種(멸종)의 경우처럼 쓰인다. 또 불을 끄다의 뜻과 물에 가라앉다의 뜻도 있다. 明滅(명멸)은 불이 켜졌다 꺼졌다 함, 또는 보였다 사라졌다 함을 뜻한다. 人踪滅(인종멸)은 사람의 자취가 사라졌음을 가리킨다.
새의 움직임과 사람의 흔적조차 사라졌다. 그렇게 고요함과 깨끗함을 표현한 시인은 다음과 같이 작품을 완성한다. ‘외로운 배에 도롱이 입고 삿갓 쓴 늙은이가(孤舟사笠翁·고주사립옹), 눈 내리는 추운 강에서 홀로 낚시한다(獨釣寒江雪·독조한강설).’ 외로운 배에 도롱이 걸치고 삿갓 쓴 노인을 등장시켜, 그에게 눈 내리는 추운 강에서 낚시하게 한다. 이때에 새가 날지 않고 사람의 자취가 사라진 것이 눈 때문이라는 것도 분명해진다. 눈 내리는 강산과 낚시하는 노인의 고요함과 깨끗함과 외로움과 추위의 어우러짐, 그것은 초월의 추구일까 세속에 대한 미련일까. 唐(당) 柳宗元(유종원)의 ‘江雪(강설)’에 보인다.
오수형 서울대 교수·중문학
온라인기보, 대국실, 생중계는 동아바둑(bad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