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끊기 어려운 세 가지가 있다. 마약 도박 그리고 소매치기. 소매치기를 끊으려고 스스로 검지를 자른 한 전과자는 그 뒤 중지를 주로 써서 소매치기를 했다나. 소매치기만 18년 동안 수사한 ‘소매치기들의 저승사자’, 서울 남대문경찰서 강력 3팀 오연수 반장의 말이니 믿어도 된다. 요샌 사람들이 현금을 안 갖고 다녀 수입이 줄었지만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하루에 1000만 원씩 벌었다니, 딴 일을 할 마음이 없었을 거다.
영화 ‘무방비도시’(상영 중)는 기업형 소매치기 조직과 광역수사대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회사’로 불리는 조직에는 ‘사장’이 있고, 현장에선 ‘바람’이 분위기를 조성하면 ‘안테나’가 망을 보고 ‘기계’가 작업을 한다. 영화에 각종 기술이 나오지만 빠르게 지나가 버려 궁금했던 것을 오 반장에게 다시 물었다. 그는 영화의 자문역을 맡았으며 영화 속에서 배우 손병호가 ‘오연수 반장’이라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평소 사람 얼굴이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해 핀잔을 듣는다는 오 반장은 여태까지 잡은 1000여 명의 소매치기는 다 기억하며 눈빛만 봐도 그들을 알아본다. 보통 사람은 정면을 보고 걷지만 소매치기는 핸드백이 있는 사람의 허리선에서 눈동자가 왔다 갔다 한다.
강도나 폭력배는 범행을 ‘일’이라고 표현하지 않지만 소매치기는 다들 ‘일 나간다’고 한다. 타고난 손기술이 필요해 아무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술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은 ‘안창따기(벙카치기)’. 영화에도 나오는데 양복 상의 안감을 째고 지갑을 빼내는 것이다. 주머니가 있는 쪽의 손으로 버스 손잡이를 잡고 있으면 양복이 몸에서 뜨기 때문에 뒤에서 손을 넣어 안감을 짼다. 오 반장이 잡은 범인 중엔 2, 3초 안에 안주머니 속 지갑의 현금만 빼내는, 귀신이 ‘형님!’ 할 소매치기도 있었다. 그분? 지금 물론 교도소에, 한국도 아니고 일본 교도소에 있다. 한국의 손기술을 해외에 과시하러 갔던 거다. 영화 속 원정 소매치기단은 정말로 있었던 일이었다. 범인 중엔 그에게만 5번 잡힌 전과 30범 아줌마도 있었다. 영화 속 소매치기 전과 17범 강만옥(김해숙)은 비교도 안 된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하다.
지난해 전국에서 1047건(경찰 집계)의 소매치기가 발생했다. 실제론 훨씬 많을 것이다. 특히 요새는 현금인출기 뒤에서 비밀번호를 훔쳐본 뒤 지갑을 소매치기해 잔액을 빼가는 ‘엿보기’, 동전을 떨어뜨린 뒤 “아줌마, 돈 떨어졌어요” 해서 줍게 하고는 뒤에서 목걸이를 끊어 가는 ‘굴레따기’가 많단다.
손예진이 연기하는 소매치기는 섹시하고 예쁘다. 그러나 진짜 소매치기들은 그렇게 하고 안 다닌다. 눈에 띄면 안 되니까. 또 영화 속 그들에겐 각자의 인간적인 사정이 있어 연민도 느꼈지만, 소매치기는 저질 범죄다. 치사하게도 그들이 훔치는 것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니며, 백화점에서도 한적한 명품관이 아니라 세일 코너에 북적대는 서민들의 지갑이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