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헉∼. 힘들어요. 더 못 올라가겠어요.”
“얼마 안 남았어. 저기 태극기가 보이잖아.”
프로농구 KT&G 이상범(39) 코치는 지난해 11월 초 경기가 없는 날 유도훈(41) 감독과 함께 관악산을 찾았다. 1990년대 초반 후배 문경은(SK) 이상민(삼성) 등과 연세대 전성기를 이끌던 이 코치는 안양에 연고를 둔 전신 SBS 코치 때부터 가끔 관악산에 다녔다. 문제는 그때만 해도 등산을 한 게 아니라 트레이닝복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산중턱까지 산책하는 수준이었던 것. 95kg까지 불어난 체중 탓에 정상까지 올라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국기봉’은 해발 500m가 안 되지만 바위가 많고 길이 험해 쉽지 않은 코스. 평소 등산을 즐기던 유 감독은 이날 이 코치를 채근해 결국 국기봉을 밟았다. 혼쭐이 난 이 코치는 ‘다음부터 혼자 와서 평소처럼 해야지’라고 다짐했고….
하지만 이틀 뒤 홈 경기에서 팀이 승리하자 이 코치는 마치 자신이 국기봉에 다녀와서 이긴 것 같은 착각(?)에 빠졌고 그 후 홈 경기 때마다 등산을 했다. 11월 중순부터 KT&G의 홈 경기 승률은 80%에 가깝다.
처음에는 정상에 오른 것을 믿을 수 없다며 동영상을 찍어 오라고 했던 선수들이 요즘은 이 코치에게 ‘원정 가서도 등산하라’고 한다는 게 프런트의 얘기.
이 코치는 “산을 오르내리면서 경기에 대해 조용하게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고 살도 빠졌다. 앞으로도 계속 국기봉에 오를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