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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2000년 세르비아 아르칸 피살

입력 | 2008-01-15 03:04:00


2000년 1월 15일 오후 5시 15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인터콘티넨털 호텔 로비. 식당에서 걸어 나오던 한 중년 남자를 향해 총구가 불을 뿜었다. 남자는 눈과 입, 관자놀이 등 얼굴에 3발의 총탄을 맞고 현장에서 숨을 거뒀다.

‘발칸의 백정’ ‘인간 도살자’로 불리던 그의 이름은 아르칸. 본명은 젤리코 라즈나토비치. 17세부터 벨기에, 네덜란드를 오가며 은행 강도짓을 벌인 그는 두 번이나 체포됐지만 모두 탈옥에 성공했다.

아르칸은 세르비아인의 우월성을 신봉하는 극우 민족주의에 빠져 1990년 사재를 털어 민병대인 ‘타이거스’를 창설한다. 그는 이듬해부터 벌어진 보스니아 내전에서 이슬람교도와 크로아티아인 등 비(非)세르비아계를 대상으로 일방적인 학살을 자행한다.

보스니아 내전은 1991년 보스니아가 유고연방에서 독립을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독립을 막으려던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은 이 지역을 대상으로 전쟁을 선포했다. 4년간 500개 마을이 불타고 27만 명이 사망했다.

밀로셰비치 대통령은 1998년 코소보 사태 때 주민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알바니아계가 분리 독립을 주장하자 이들을 ‘청소’할 것을 아르칸에게 부탁한다.

아르칸은 아예 마을 전체를 불태워 버리는 수법으로 주민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심지어 세르비아계를 확산시킨다는 이유로 알바니아계 여성에 대한 집단 강간을 명령하기도 했다.

“무장한 세르비아인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수류탄을 던지고 불을 놓으며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3일 동안 아이들과 다락방에 숨어 지냈는데 아이들에게 진정제를 먹여야 했습니다. 그곳은 한마디로 지옥입니다.”

하지만 세르비아 인민은 아르칸을 전쟁 영웅이자 애국자로 추앙했다. 그는 국회의원으로도 선출됐고 미모의 여가수와 세 번째 결혼식을 올리며 축복을 받았다.

나치의 2인자 헤르만 괴링은 전범재판장에서 “전쟁의 승자는 언제나 재판관이 되고 패자는 피고석에 선다”며 자신의 행위가 정당했음을 주장했다.

전 세계에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는 지금 제2, 제3의 괴링과 아르칸이 끊임없이 태어나고 있다. 그로 인해 수많은 목숨이 문명국의 외면 속에서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