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은 언제나 큰 의미를 지닌다. 처음이 아니면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한국 오페라의 역사는 1948년 1월 16일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처음 공연된 ‘춘희(椿姬·라트라비아타)’로 시작된다.
춘희는 1840년대 프랑스 파리 사교계 매춘 여성의 비극을 그린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동백아가씨’를 베르디가 오페라로 만든 작품이다. 주인공인 고급 창녀 비올레타는 귀족 청년 알프레도를 사랑하지만 그의 아버지의 요청에 따라 그의 곁을 떠난다. 이후 병들어 지친 가운데 알프레도를 만나 오해를 풀고 그의 품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내용이다. 부르주아 계급의 위선과 ‘라트라비아타’(바른 길에서 벗어난 여자)인 비올레타의 순수함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국내에서 처음 공연된 춘희에선 이탈리아 유학파 테너 이인선과 소프라노 김자경이 주연으로 출연했다. 한국 오페라의 첫 장을 연 춘희는 당시 총 10회 공연이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오페라 발전의 기반을 마련했다.
춘희가 만들어 낸 파급 효과는 컸다. 춘희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았다. 고급 창녀와 귀족 청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는 우리 멜로 영화가 흔히 다룬 소재로서 그만큼 정서적으로 친숙했다. 첫 공연 이후 지금까지도 매년 공연되고 있는 이유다.
1964년엔 엄앵란 신성일 주연의 ‘동백아가씨’란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섬 처녀와 서울 청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내용으로 춘희를 각색해 만든 작품이다. 당시 엄청난 히트를 쳤고 영화 주제가 ‘동백아가씨’를 부른 이미자는 국민가수가 됐다.
춘희로 한국 최초의 프리마돈나가 된 김자경은 ‘영원한 비올레타’란 별명을 얻었고 한국 오페라의 대모가 됐다. 그는 줄리아드음악원을 졸업하고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하던 1968년 ‘김자경 오페라단’을 창단해 한국 오페라의 중흥을 이끌었다. 한국 오페라는 1993년 서울 예술의 전당에 전용극장인 오페라하우스가 완공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그런데 한국 오페라의 메카인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 지난해 12월 화재가 발생해 10개월 넘게 문을 닫게 됐다. 예술의 전당과 국립오페라단 등이 기획한 7개의 공연이 취소됐다. 오페라 탄생 60주년을 기념하는 뜻 깊은 해의 쓸쓸한 현실이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