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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음악계 “법개정 철회 무기한 투쟁”

입력 | 2008-01-17 02:56:00


“국내 콩쿠르 병역특례 폐지땐 명맥 단절 불보듯”

음악 무용 등 국내 콩쿠르 우승자들에게 주는 병역특례 혜택(공익근무요원의 신분으로 34개월간 무용공연으로 대체복무)을 폐지한 병역법 개정안을 원상회복하라는 문화예술계의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김현자(문화예술위 무용분과위원장) 국립무용단장은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열린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의 문화예술계 간담회에서 “국내 콩쿠르 우승자들에 대한 병역특례 혜택은 10여 명에 불과하지만 국내 남성 무용수들의 명맥을 잇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다”며 “이 제도가 국내 무용 발전에 기여해 온 만큼 기존의 병역법대로 원상회복해 달라”고 요청했다. 인수위 관계자는 “오늘 아침 신문(동아일보)을 보고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 각계 여론을 수렴해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무용인들은 이날 김복희 한국무용협회장, 최성이 한국발레협회장, 한선숙 한국현대무용협회장, 최태지 국립발레단장, 김긍수 한국남성무용포럼 회장 등으로 구성된 ‘병역법 개악규탄 비상대책위원회’ 명의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국제 콩쿠르 입상자에게만 병역 혜택을 주겠다고 하는 개정안에 대해 △재능 있는 남성 무용수 발굴을 외국인의 손에 넘겨버렸고 △반세기 역사의 국내 콩쿠르는 무시하고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외국의 대회만 인정하겠다는 ‘문화사대주의’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음악협회(이사장 김용진)도 이날 대책회의를 열고 서울대 정태봉, 연세대 이경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남윤, 이화여대 김기순 학장 등 전국 18개 음대학장과 음악 관련 단체들이 참여한 성명서를 내고 “병역법 개정안이 철회될 때까지 전국 음악인들은 무기한 저지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음악협회는 “지휘자 정명훈, 소프라노 신영옥, 조수미도 국내 콩쿠르 수상자이며, 최근 국내파 신예 피아니스트인 김선욱 군 등이 국제콩쿠르대회를 휩쓸고 있는 것도 국내 콩쿠르가 발판이 됐다”며 “한국 음악계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시점에서 국내 콩쿠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발상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음악협회는 “정치권과 정부는 병역 면제를 둘러싸고 선심성 특혜를 부여했던 졸속 행정 행위를 뒤돌아보고, 그 여론의 역풍을 예술계에 덤터기 씌우는 ‘병역법 개정안’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군대 갔다면 파리무대 못 섰을것”▼

동아콩쿠르 금상… 동양인 첫 발레단 솔리스트 김용걸 씨

“남자 발레무용수의 성장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꿈을 이룰 비전이 안 보인다면 누가 발레를 하겠습니까.”

340여 년 역사의 세계적인 무용단인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사상 유일한 동양인 솔리스트인 김용걸(35·사진) 씨. 국내 남자발레 무용수 유럽 진출 1호인 그는 한국 무용계의 자존심이다.

“대학 4학년 때 동아무용콩쿠르에서 금상을 받았어요. 대학 1학년 때부터 도전했는데 마지막에 수상했어요. 만일 안 되면 현역으로 군대에 가야 했고 무용수의 꿈은 접어야 했을 겁니다.”

동아무용콩쿠르 신인무용콩쿠르 등에서 병역 혜택을 받는 우승자는 1년에 10여 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혜택이 사라진다는 소식을 파리에서 들은 그는 전화 인터뷰에서 “저 같은 발레 인생의 꿈을 꾸는 남자 무용수들은 사라질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가 2인무 부문 1위를 했던 파리국제콩쿠르는 10회를 못 채우고 재정난으로 사라졌다. 이처럼 부실한 해외 콩쿠르도 많은데 40년 넘게 이어져 온 동아무용콩쿠르 등 국내 콩쿠르 수상자에 대한 병역특례 폐지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외국에는 남성 무용수들에 대한 편견도 없고 조기교육을 통해 성장하기 때문에 남녀 무용수의 비율이 반반쯤 된다”며 “어려움을 뚫고 세계 곳곳에 한국 남성 무용수들이 진출하기 시작했는데 그 꿈을 꺾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