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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일상을 만날 때]쥐띠 문학인들 올해도 뭔가 일낼 것 같은 예감

입력 | 2008-01-18 03:02:00


‘사람이나 고양이의 잠을 깨울/가볍고 요란한 소리들은 깡통 속에/양동이 속에 대야 속에 항상 숨어 있다/어둠은 편안하고 안전하지만 굶주림이 있는 곳 (…) 거품을 물고 떨며 죽을 때까지 그칠 줄 모르는/아아 황홀하고 불안한 식욕.’(김기택의 ‘쥐’)

이 작은 동물의 습성에 인간의 욕망을 겹쳐 놓는 시인의 눈. 또는 김소진의 단편 ‘쥐잡기’에서 마음의 상처로 고통스러운 부자(父子)가 집요하게 쥐를 잡듯, 현실의 쥐는 유쾌하지 않은 대상이다. 올해는 그 쥐의 해. 가장 작지만 12간지의 첫자리에 놓이는 쥐는 사실적 의미는 걷히고 다산, 근면, 영민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가 입혀졌다.

쥐의 해 첫 달 공교롭게도 쥐띠 문인들이 잇달아 작품을 출간했다. 정월 초하루에 나온 이문열(60) 씨의 ‘초한지’ 1, 2권(전 10권 예정)은 2주 만에 4만여 권이 팔렸다. 지난주에는 띠동갑내기 두 작가, 구경미(36) 씨와 김사과(24) 씨가 각각 장편 ‘미안해, 벤자민’과 ‘미나’를 선보였다.

같은 동물의 해에 태어난 재기 있는 사람들을 확인하는 것은, 뛰어난 예술가를 편애하는 해가 어디 있겠느냐는 지적이 따른다 해도, 흥미로운 일이다. 가령 김용택(시인) 김훈(소설가) 씨가 올해 환갑을 맞는 쥐띠 문인이라는 사실, 남진우(시인) 성석제(소설가) 씨가 그보다 열두 살 어린 쥐띠라는 사실 등.

그러고 보니 김훈 씨와 김용택 씨는 막역한 사이다. 20여 년 전 기자와 취재원으로 만나 금세 친구가 됐다.

“그놈(김훈 씨)이 해마다 여름, 겨울에 섬진강에 내려왔어. 마누라랑 딸을 데리고 와서는 우리 집에서 자고 가고…. 한번은 눈이 엄청나게 왔는데, 운전 안 한다는 택시를 억지로 잡아타고도 왔지. 내가 서울 올라올 땐 길을 몰라서, 광화문 지하도에서 어디로 나가야 할지를 몰라서 우왕좌왕하다가 훈이한테 전화 몇 번씩 했고.”(김용택 씨)

“용택이가 촌놈이라 서울 지리를 잘 몰라. 일단 아무 데로나 나와라 그랬어. 그러면 광화문 사거리 한가운데에 큰 남자가 서 있는 게 보일 거다. 그 남자 아래 있어라, 그럼 내가 데리러 가겠다, 그랬지.”(김훈 씨)

두 친구를 만나게 해 준 그 광화문 남자, 후일 김훈 씨의 장편 ‘칼의 노래’의 주인공이 된다. 근면의 상징인 쥐띠여서인지 김용택 씨는 올해 산문집과 동시집 등을, 김훈 씨는 새 장편을 발간한다는 계획으로 분주하다.

그뿐일까. 우리 문단에서 가장 생산력이 활발하다는 1970년대 생 작가 중 쥐띠들의 한 해 계획을 물었더니 창작열로 가득하다. 문예지 연재소설 ‘H.O.U.S.E.’에 한 해 내내 몰입하리라는 정이현 씨, ‘내용 유출 불가’의 전작 장편을 준비 중이라는 이기호 씨, 중국에 머물면서 열심히 소설을 쓰고 있으며 “아마도 지겹도록 퇴고할 것”이라는 박형서 씨, 조심스럽게, 꼼꼼하게 첫 장편에 도전하는 윤성희 편혜영 씨….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쥐를 닮은, 조용하고 내실 있는 부지런함을 확인한다. 글쓰기에 대한 이렇듯 ‘황홀하고 불안한 식욕’으로 올해도 우리 문학은 풍요롭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