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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에 10만원” 교수논문도 대신 써준다

입력 | 2008-01-18 15:27:00

대필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


졸업시즌 ‘대필 사이트’ 극성…특수대학원생이 주고객

서울 소재 사립대 4학년에 재학 중인 연모(26)씨는 지난해 7월 같은 학교 야간 대학원에 다니는 직장인 성모(30대)씨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회사일이 바빠서 그런데, 혹시 대학원 선배 중에 내 논문을 대신 써줄 사람이 없을까?"

"글쎄요…."

연씨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자 성씨가 재빨리 덧붙였다.

"넌 그냥 소개만 해 주면돼, 그러면 사례비로 100만원을 줄게."

비싼 등록금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연씨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제의를 거절했다고 한다.

연씨는 "소개 사례비만 100만원이면 실제 대필자에게는 얼마를 줬을지 지금도 궁금하다"며 "돈만 있으면 쉽게 학위를 딸 수 있다는 말이 실감났다"고 한숨을 쉬었다.

●"교수 논문도 대신 써 드려요"

졸업시즌을 앞두고 논문 대필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성씨처럼 후배나 지인을 통해 대필을 부탁하는 경우는 물론 최근에는 인터넷 등을 통해 대필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도 늘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한 페이지 당 적게는 1만원, 많게는 10여만 원을 받고 자신들의 '수수료'를 떼고 대필자들에게 돈을 건네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원생들 사이에서 '수준 높은 논문 대필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소문난 G사의 인터넷 홈페이지.

홈페이지 화면에는 연설문, 제안서 등의 대필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문구만 있을 뿐 학위 논문을 써 준다는 내용은 없었다.

하지만 기자가 직접 전화를 걸어 "인사조직에 대한 경영학과 박사 졸업 논문이 필요하다"고 하자 "50~60페이지 기준으로 50만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지금 대필 청탁이 밀려 있어 신청을 하려면 서둘러야한다"며 "전문 학위를 갖춘 분이 쓰기 때문에 논문의 질은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고 친절하게 안내했다.

대학과 대학원 재학생들에 따르면 G사와 같이 학생들에게 잘 알려진 대필 업체는 줄잡아 10여 곳에 이른다.

또 다른 대필 업체 W사의 홈페이지를 찾아 논문 대필 가능 여부를 묻자 머뭇거림 없이 "50장 분량에 600만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업체 관계자는 "우리 필진들은 교수들의 연구 논문도 대신 써주는 사람들"이라며 "가격은 타 업체에 비해 다소 비싸지만 논문의 질은 확실하다"고 자랑했다.

●"지인들 통한 대필은 부르는 게 값"

지인을 통한 대필도 과거에는 친구나 선후배의 부탁을 받고 못이기는 척 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최근에는 점차 조직화, 체계화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부터 부업으로 논문 대필을 하고 있는 김 모(36)씨는 "특수대학원의 경우 재학생들을 대신해 교수가 나서 대필자를 구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김씨에 따르면 특수대학원의 경우 대부분 직장인인 재학생들은 '학생'이라기보다는 '고객'에 가까운 개념. 때문에 이들에게는 높은 수준의 학업성취도를 요구하지 않을 뿐더러 더 나아가 교수가 나서서 학위 취득에 필요한 '논문 대필' 서비스 까지 제공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부업으로 논문 대필을 시작한 것도 특수대학원에 재학 중인 모 은행 간부의 논문을 대신 써 달라는 지도교수의 요구에 응하면서부터였다"고 말했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특수대학원 졸업 논문은 거의 다 대필이라고 보면 된다"는 게 김씨의 주장.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논문을 요구하는 일반대학원의 경우 논문 대필에 3, 4명의 석·박사급 조교가 달라붙고, 이때 대필의 대가는 '부르는 게 값'이어서 보통 1000만 원 이상의 고액이 오간다"는 것이다.

●경찰 "논문 대필은 형사처벌 대상"

이처럼 논문 대필이 범람하자 경찰도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최근 인터넷 사이트 및 지인을 통한 논문 대필이 꾸준히 성행해고 있는 것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고 18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논문 대필은 국공립대의 경우 공무 집행방해, 사립대는 업무 방해 혐의에 해당한다"며 "적발될 경우 형사처벌 뿐 아니라 졸업, 취업이 취소된다"고 경고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손기은(25·중앙대 경영학부 4학년)씨가 참여했습니다.